보이는, 보이지 않는
"폭설의 여파가 대단합니다. 여전히 도심 곳곳에 쌓인 눈이 치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면도로나 좁은 골목길은 빙판길 그대로여서 운행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로 주변에 쌓여있는 눈이 녹으면서 젖은 노면에는 기온이 떨어진 새벽과 아침 시간 때 이른바 블랙아이스 현상이 나타나 사고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뒤뚱뒤뚱 걷는다. 모든 길이 빙판이 된 탓에 걷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걷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요새는 특히 더 그런 기분이 든다.
도로가 얼어붙었다. 블랙아이스. 보이지 않는 얼음이 발밑에 있다. 눈앞에 난 길을 보며 걸으며 너와 나 사이를 생각했다.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길을.
12월이 되면서 그 길은 온통 보이지 않는 것으로 뒤덮였다. 너와 나 사이의 길 위에는 미끄러운 것이 있었지만, 그건 결코 서로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디딘 발에 우린 언젠가부터 휘청였고 이내 넘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위험이 발밑에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 사이엔 과함이 있었고, 때론 과함이 무서워 필요 이상으로 부족했다.
부드럽게 다가가지 못했고, 알맞은 거리에 서지 못했고, 지나쳤고, 미치지 못했고, 마주하지 못했다.
너는 북쪽에 있는 차가운 공기와 같은 사람이었고 나는 남쪽에 있는 바다 같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필요 이상으로 뜨거워졌고 너는 더욱더 차가워졌다. 네 안에서만 소용돌이치던 찬 바람을 난 어설프게 건드렸다. 나의 뜨거운 기운으로 너를 온전히 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너의 찬 기운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날 만큼 큰 것이었고 나의 따뜻함으로는 너를 안을 수 없었다. 나는 너를 감싸고 있던 장막에 균열을 냈지만, 그 균열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너를 끌어안아 나의 세계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내 꿈은 막연했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코, 절대.
우리의 마음은 동등하지 않았다. 너를 뒤덮고 있던 찬 바람은 네 안을 벗어나 나까지 덮치고 말았다. 나의 따뜻한 기운은 너로 인해 파괴됐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를 어설프게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나의 깊은, 안의 안까지 서늘한 바람이 파고들었다. 나는 너무 시려지기 시작했다.
적당한 온기만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적당한 한기만 가졌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우리의 온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벌어졌고 차가웠던 너와 뜨거운 나는 이내 부딪혔다.
북극이 열렸다.
시린 바람이 너와 나 사이를 가득 채운다. 추운 겨울이 왔지만, 더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의 끝은 어찌 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위험은 방치되고 있었다. 폭한은 이제 시작이었다.
눈이 아파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