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와 ㅗ

타이밍, 그 감각

by 미하

바야흐로 로봇공학의 시기였다. 지금 세계는 오래전 1990년대에 유행했던 가타카라는 영화의 배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심오하게 진화된 세계였다.

특히 발전한 것은 타이밍을 찾는 기술이었다. 사람들은 T칩이라 불리는 정교한 반도체를 몸 안에 삽입했다. 모든 것은 이 칩이 계산하는 정확한 타이밍에 의해 설계되고 실행되었다. 학업, 연애는 물론 일상에서 첨단 산업에까지 T칩 기술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T칩이 고장 나면 며칠 물을 못 먹은 사람처럼 망가지기 일쑤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각 국가에서는 신생아의 몸에 기본 T칩을 삽입했다. 그리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새로운 칩을 더 삽입했다. 이 세계에서는 재력에 의한 계급의 분리가 더욱 심화되었다. 고대부터 근대 현대까지 이전의 세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은 존재했지만, 그때의 계급의 차이가 개미똥이라면 지금의 차이는 코끼리똥에 가까웠다.


지금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ㅗ는 극빈층에서도 밑바닥에 깔린 빈자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단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ㅗ는 꿈을 꾸는 청년이었다. ㅗ는 21세기의 위대한 축구 선수 대한민국의 손흥민을 사랑했다.


T칩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축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에는 낭만이 있었다. 이제 스포츠에는 철저한 숫자만 존재했다. 스포츠야말로 T칩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돈으로 굴러가는 산업이었다.

모든 스포츠는 거리감각, 즉 타이밍, 바로 그 자체였다. 스포츠 스타들은 이제 불법 약물이 아닌, 불법 T기술에 의존했다. 아직 활성화되기 이전의 베타 기술을 검증도 거치지 않고 몸 안에 삽입했고, 가끔씩 기술 도핑에 적발된 선수들이 뉴스를 장식했다. 하지만 그런 뉴스들이 매일 같이 헤드라인을 도배해도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렸다. 스포츠 선수의 몸 안에 삽입된 T칩의 존재를 알면서도 마치 스포츠에는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여겼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아름다웠던 스포츠의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은 이제 거대한 거짓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ㅗ는 미혼모의 아들로 병원이 아닌 집에서 태어났다. 그렇기에 몸에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T칩도 삽입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첨단 기술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미혼모에 대한 대우와 인식은 고대의 고리타분했던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ㅗ는 주눅 들지 않는 아이였다.

ㅗ는 닳고 닳은 자신의 축구공을 사랑했다.

ㅗ는 커가면서 “천부적인 소질과 재능”이라는, 이제는 사라진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T칩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ㅗ는 동물적인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ㅗ는 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일은 그 어떤 유스 클럽도 거치지 않고 거리에서 FC 바르셀로나로 바로 스카우트된 천재 축구 선수로 뉴스의 일면에 등장하는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ㅗ의 모든 생활은 다큐멘터리 필름에 담아지고 있었다. T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연의 몸을 가진 사람이 모든 첨단의 T칩을 뛰어넘은 사건이야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을 소재였으니까.

‘천재’라는 말도 ㅗ로 인해 촬영단이 새롭게 발굴한 단어였다. 촬영단은 ㅗ야말로 사라진 스포츠의 낭만을 찾아와 줄 메시아라 칭송했다.

ㅗ는 잠시 붕 뜨는 기분이었지만 손흥민이 롤 모델이었던 만큼 자만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나 겸손하되 자신감은 충만한 그런 사람.


ㅗ는 스포츠에 순수의 시대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자신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했다.

사람들에게 거짓이 아닌 진정한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전해주길 원했다.

ㅗ는 이제 그 첫걸음을 뗀 것이었다.

ㅗ의 가슴이 큰 꿈으로 부풀어 올랐다. 심장이 더욱 세차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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