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지켜줘야 할 귀여운 엄마
5월의 막바지 주말. 복숭아 과수원의 봉지 씌우기 작업이 한창이라 가족들 몇몇이 모였다. 몸을 쓰는 일에는 젬병인 나는 사다리에서 떨어질 뻔한 경험을 하고는 아빠가 손수 지어 놓은 통나무집에서 놀랐던 마음을 잠시 추스르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사다리에 올라가지 말고 점심 채비나 하라며 일러줬다.
점심 메뉴가 닭볶음탕인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밥통은 있는데 쌀은 어디에 있는지, 식기는 어디에 있는지, 냉장고에서 반찬은 무얼 꺼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내가 그러고 있을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다시 돌아와 냉장고에서 쌀을 꺼내 씻어 안치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꺼내 닭볶음탕을 냄비를 올렸다. 그리고서는 달랑 두 칸짜리 싱크대 장을 열어 수저통과 식기들을 꺼냈다.
닭볶음탕이 끓여지는 동안 엄마는 과수원 옆 텃밭에서 상추와 깻잎, 부추를 듬성듬성 뜯어와 졸졸 흐르는 수돗물에 씻어 손으로 대강 찢어 넣고는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설탕과 참기름을 조금씩 두른다. 순식간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맴도는 겉절이를 뚝딱 만들어 낸다.
엄마의 빠른 손으로 만들어진 밥상은 언제나 그랬듯 인기가 많았고 바로 비워졌다. 아직 마음이 가시지 않은 나는 사다리에 올라가기 겁이 나 설거지를 한다고 했고 아빠가 타주는 믹스커피 한 잔만 마시고 바로 할 심상이었다. 그러다 아빠랑 대화가 좀 이어지는 사이 엄마는 내가 할 설거지를 마치고 뽀얀 행주로 그릇들을 닦아 다시 싱크대로 장으로 넣어두고는 과수원으로 향했다. 나로서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렇다 저렇다 할 새가 없었다.
빠르지 않았으면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딸만 내리 넷을 낳고 아들까지 오 남매를 키워온 엄마에게 게으름은 허락되지 않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거의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는 매일 아침 아이들의 밥상을 차리고 저녁에는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해 가며, 한 번씩은 직접 만드는 유과에 도넛에 색색의 경단까지도, 해 먹이는 일에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잠시 쉴 겨를도 없이 엄마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복숭아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한 알 한 알 빠른 손놀림으로 봉지를 씌운다. 꼭대기 작업이 끝나면 총총 계단을 내려와 옆 나무로 사다리를 옮겨 곧바로 다시 올라간다. 아빠가 한 그루의 나무를 작업하는 동안 엄마는 두 그루 이상을 끝내고는 하는데, 철딱서니 없이 멀리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귀여운 날다람쥐가 생각난다.
곧 있으면 칠순이 가까워지는 나이지만 엄마는 아직 귀여운 날다람쥐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시기에도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고,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며 단 한 번도 성적에 대한 잔소리 없이 자식들이 하고 싶다는 대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엄마, 그러면서 틈틈이 짬을 내어 본인 인생도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
이제 서야 엄마의 날다람쥐 같은 행복한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다. 엄마가 평생을 그래왔듯 이제는 우리가 더 살뜰히 챙겨주려 한다. 누구보다 고단하게 살아왔을 날다람쥐의 부지런함 덕분에, 어느새 우리 오 남매도 엄마의 모습으로 물들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