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다.

by 로윤로윤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자유여행을 선택했다.

말 그대로의 자유를 위해 패키지는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자유에는 늘 사건사고가 따라붙었다.

신혼여행을 떠난 2013년 그리스 산토리니에서는 비행기가 캔슬됐다.

신혼여행의 버킷리스트는 무작정 산토리니였고, 그 천국 같던 산토리니에서 하루만 더 있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바람이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5년 홍콩에서는 새 신발을 신고 나섰다가 이틀 내내 내린 비에 샌들이 끊어졌다.

본드로 붙여도 소용없었고, 두 시간을 헤맨 끝에 새로 산 쪼리를 신고 <미드레벨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마신 따뜻한 야채수프 한 그릇이 그날 여행의 전부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세 식구가 떠난 2017년 오키나와에서는 유료 주차장에 차가 갇혔다.

밤이 깊어 문이 닫힌 주차장에 렌터카 두 대만 남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두 팀 모두 한국인이었다. 우리는 협업했고, 두 시간 만에 차를 구출했다.

2019년 괌에서는 호텔 해변으로 가는 길에 쇠로만들어진 대형 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발짝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다. 다음날에는 아이가 다쳐 머리에 상처를 남겼다. 우리는 그것을 액땜이라고 불렀다.

길었던 코로나 시절을 끝내고, 2023년 프랑스에서는 파리 지하철 화장실에서 원인 모를 실신을 했다. “마담(madame), 마담(madame)” 나를 깨우던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 덕분에 의식을 붙잡을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구급차를 탔다. 그것도 파리(Paris)에서.

2024년 베트남에서는 ATM이 트래블카드를 삼키는 바람에 하루 동안 빈곤한 여행자 신세가 되어야 했고,

2025년 이탈리아에서는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세 달 전 심사숙고 끝에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는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나와야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고민 끝에 급하게 고른 다른 숙소 비용으로 예상 밖의 지출이생겼지만,

결국 우리는 더 좋은 동네에서 더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상하게도 이 모든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늘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 정도면 괜찮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여행들은 나의 마흔 이전 삶과 많이 닮아 있었다.

계획대로 흘러간 적은 없었고, 무사한 적도 드물었지만,

그럼에도 다음으로 가는 선택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무조건적인 자유여행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계획 없이 위험을 만났지만,

결국 살아서, 웃으면서, 다음 여행을 또 떠난다.

인생이 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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