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적당히’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당하다는 말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았고, 조금은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뭐든 더 잘하려 애썼고, 아주 괜찮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살기도 했다.
가정도 그랬고, 직장도 그랬고, 친구도 그랬다.
내가 자라왔던 가정도 그랬고 결혼을 하고 만들어온 가정 또한 그랬다. 늘 다정한 말만 오가는 집은 아니었고, 작은 사소함에서 시작되어 서운함으로 이어진 날도 적지 않았다.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을 했지만 저녁에는 또 다른 출근으로 이어지는 날들이 시작되면서는 때때로 그 서운함의 무게 또한 소리 없이 커져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매일이 다정하고 서운함을 잘라낼 수는 없었지만 하루일과를 마치면 돌아올 곳이 있었고, 결국에는 다시 같은 밥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적당히 괜찮음’ 덕분에 우리는 너무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늘 즐겁지는 않았고, 자랑할 만큼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견딜 수는 있었다. 당장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아주 싫지는 않았고, 잠을 자고 눈을 뜨면 매일 아침 출근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고맙게 돌아오는 월급날이 있었다.
먹고살아야 하는 돈 때문인지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싸한 명함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어릴 때 만난 친구들과는 울고 웃어가며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어느새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오래 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로 변해갔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안부를 묻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 그런 관계들이 결국은 가장 오래 남았다.
마흔이 되어서야 나는 이 공통점을 알아차렸다.
가장 오래 유지된 것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 ‘적당히 괜찮았던 상태’였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아주 좋은 하루를 바라기보다 적당히 괜찮은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무너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내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