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인상이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대화를 하고 진심을 드러내고 나면 첫인상과 정반대라며 시쳇말로 ‘이미지가 깨졌다’라는 말도 서슴없이 듣고는 한다.
어릴 때는 그 첫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부드러워 보이기 위해 애썼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 노력 덕분에 좋은 관계가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지는 않았다.
때로는 노력의 댓 가 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리감이나 시기와 질투 같은 기분 나쁜 감정들과도 마주해야 했다.
조금 더 살다 보니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력은 어디까지나 ‘노력’ 일 뿐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닌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진짜의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어진 관계는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뿐만이 아닌 주변을 둘러봐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인을 포함한 친구들, 직장 동료들, 심지어는 가족들 까지도 “왜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라며 관계의 어려움을 혼자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의 나 역시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질문 속에는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조금은 무거운 욕심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다.
이 문장을 받아들이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와 멀어질 때마다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만든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만 애쓰고 있다는 걸 결국은 알게 되었고, 많은 관계 앞에서 스스로를 이미 소진시켜 버렸다.
그렇게 나는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이 되어 있었던 걸 한참을 돌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나는 진짜의 나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 후회도 자책도 덜 하게 되고,
그래야 적당히 괜찮은 인생을 조용히,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