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웃어준다고 마음속까지 웃어주는 건 아니여

by 로윤로윤

대학교 방학이 되면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들과 종종 가던 동네 호프집에서 일하던 스물한 살 여름의 이야기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일이 중요했다. 누군가 나를 좋게 봐주고,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빈 잔을 먼저 살피고, 작은 불편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든 행동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느 날 회식 같은 모임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는 평소보다 더 정성을 다해 응대했고, 자리가 끝날 무렵 한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학생 덕분에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나는 곧장 주방으로 달려가 큰 이모뻘 되는 주방이모에게 그 말을 전하며 자랑을 했다. 그런데 그때 돌아온 말은 뜻밖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여, 겉으로 웃어준다고 마음속까지 웃어주는 거 아니여.”

그 말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의 기쁨을 부정당한 것 같아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 두고두고 오래 남았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흘렀다. 마흔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그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배웠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편할 수도 있고, 친절한 말 뒤에 거리를 두는 마름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표현은 서툴지만 진심으로 곁에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모든 웃음이 나를 향한 호의라고 믿었고,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했다. 타인의 반응에 따라 기뻐하고, 작은 표정 하나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때때로 나를 지치게 했고,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잃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고, 모든 관계에 같은 온도를 기대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닌 사람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대신 진심으로 남는 관계가 무엇인지, 오래 함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용히 바라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주방이모의 말은 세상을 차갑게 보라는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말고 스스로 중심을 세우라는 말,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곳에서 나를 잃지 말라는 조언이었을 것이다.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

여전히 웃으며 관계를 이어가고, 여전히 누군가의 친절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만 이제는 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타인의 웃음에 쉽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건네는 웃음만큼은 진심이기를 바란다.

이십 년 전 주방이모의 한마디는 긴 시간을 돌아 나의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되었고,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의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지키는 법을 여전히 가르쳐 주고 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