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어린 나의 친구

by 로윤로윤

나는 서른 살 어린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가르쳐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는 되려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만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이별을 먼저 겪어야 했다.

첫 번째 임신은 겨우 일곱 주 만에 시작된 하혈로 끝이 났다. 기대할 틈도 없이 아이는 조용히 떠났다.

두 번째 임신은 어떻게 해서든 오래 붙잡고 싶었다. 아기집 모양이 좋지 않다는 할아버지 원장님의 말에 화가 나 병원까지 옮겨 다녔고, 회사에는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억지로라도 지켜보려 애썼다.

하지만 두 번째 아이도 열한 주 만에 떠났다. 젤리곰 같던 초음파 사진 앞에서 나와 만두 씨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울음을 터트렸다.

그 이후로 나는 오기가 생겼다.

한의원에서 몸이 차서 임신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갑자기 약간의 분노와 어떻게 해서라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파동을 쳤다. 커피 대신 생강차를 타서 종일 물처럼 마셨다. 좋아하던 물냉면도 외면하고, 혈액순환이 필요하다는 지식을 습득해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방과 양방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는 의학 논문까지 찾아보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그 수고와 노력 덕분이었을까.

세 번째 임신으로 선물처럼 다시 아이가 찾아와 주었다. 행여 라도 같은 슬픔이 반복될 것 같은 마음에 임신기간 내내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기에 애써 노력하고 무엇보다 간절히 지켜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작고 완두콩같이 동그랗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음을 실감시켜 주듯 잘 먹고, 잘 자고, 그렇게 감사히 자라주었다.

다섯 살쯤 되던 해였다.

남편 만두 씨의 장기 출장이 시작되면서 아이에게서 이상한 증상이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던 틱이라는 증상이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았다.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아이가 잠들고 나면 몇 날 며칠을 혼자 숨죽여 울었다. 아빠의 빈자리가 아이에게는 커다란 불안으로 다가왔을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자책이 되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두 줄로 나란히 섰다.

그러다 어느 날, 늘 숙제처럼 서둘러 읽어주던 동화책 대신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어린이집 가는 거 어때? 가기 싫거나 힘들지 않아?”

아이는 그제야 자기 마음을 꺼냈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 불안했던 순간들, 참고 있었던 감정들을 천천히 다섯 살 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렇게 아이의 속마음을 어쩌면 처음 마주했는지 모른다.

공감의 모양새로 한참을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야 아이가 이유 모를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엄마가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줘서 너무 고마워”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울고 말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휴대폰 케이스야”

마냥 어리기만 했던 마음이 어느새 자라 엄마와 아빠 사이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놓치지 않고, 혹시라도 부딪히지 않게 자기가 막아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와 만두 씨는 또 한 번 조용히 마음이 젖고 말았다.

아이가 있다는 건, 부모라는 이름이 되어 함께 자라는 일인 것 같다.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쪽이 더 많아지는 일인 것 같다.

서른 살 어린 나의 친구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천천히 듣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덜 확신하는 어른이 되었으며, 조금 더 다정한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시간이 앞으로의 인생을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러 줄 거라 조용히 믿고 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