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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Aug 25. 2016

지난날에 대한 위로

지진 후에 재건된 도시, 시칠리아 '모디카'

이탈리아 중부지방에서 지진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가의 평화롭던 일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름다움에 익숙해지면 그 모든 것이 원래부터 내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대자연은 우리가 세상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이따금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우리는 그저 조금 더 튼튼한 건물을 짓거나, 빠르게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며 지금을 맞이했다. 그나마 멀리 떨어진 누군가의 소식을 쉽게 물을 수 있는 시대, 살아남았음에 안도하며 서로를 토닥인다.



MODICA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종종 활화산의 분출 소식이 들려올 만큼 팔팔한 섬이다. 시칠리아에 있는 모디카(Modica)는 자연재해를 겪은 후에 재건된 도시들 중에 하나로, 깊게 팬 계곡을 감싸 안은 마을이다. 도로가 되어버린 계곡에 담긴 사연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시피로 만든 초콜릿이 입맛을 당기게 한다.

대홍수로 둑이 무너지면서 메워진 계곡은 중심 도로가 되었다.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 무작정 골목길을 걷다 보면, 현 위치는 오리무중. 방향이 아주 어긋나진 않은 듯한데 자꾸 옆으로 가는 기분이다. 이름이 다른 성당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니 제자리를 맴돌고 있진 않는 듯하다. 땡볕을 마다하지 않고 거리를 헤매는 나와 반대로, 태평한 고양이들은 담벼락이 내어준 그늘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 따위에는 관심없는 그들.


= HOPE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 곳곳에 성당이 숨어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셈이 버거울 정도로 성당이 들어섰다니. 지진으로 온 마을이 무너지거나, 홍수로 둑이 무너져 계곡이 메워지는 등 수차례 자연재해를 겪었기 때문일까.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신을 찾는 것 말고는 달리 기댈 곳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버거운 공간에 틈을 내어 긴 계단을 쌓고 성당을 짓는다.


= Baroque City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면서도 많은 것을 바꾸지는 않은 모양이다. 미리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재건했는지 모를 정도로 구석구석 바로크 양식을 담아두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은하게 묻어 나는 언덕 마을. 손쓸 도리 없이 망가진 것을 조금씩 바꾸거나, 아예 부수고 새로 짓기도 하며 지금을 맞이했다. 낡았지만 꽤 규모가 큰 건물에서 엉성하지만 애쓰는 악기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학교인가 싶다. 가정집에서는 시에스타에 맞춰 온 가족이 식기를 달그닥거리며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의 현실은 그렇게 규칙적으로 흘러간다.

바로크 건축 양식이 살아있다.
날이 좋으면 빨래를 널고, 화분을 가꾸는 평범한 일상.
창문 틈으로 점심을 먹는 소리가 들린다.


= Life goes ON

그들이 지나온 세월은 기와에도 내려앉아 저마다의 색으로 빛난다. 어떤 일을 겪어도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가고, 남은 이들은 스러진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자연은 그 모든 과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저 나름대로 흔적을 남겨 지난날을 전해준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새로운 슬픔이 차오른다. 아무런 잘못 없이 모든 것을 잃은 이의 맞은편에, 운 좋게 살아남은 우리가 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벼이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버거운 세상을 헤매는 짠한 존재들이 아닌가.

세월이 저마다 다르게 묻어나 제각각의 빛을 내는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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