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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Aug 28. 2016

상상 속의 전원 풍경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

이탈리아 반도는 아펜니노 산맥을 따라 아름다운 능선이 드리워진다. 땅속에서 계속되는 대륙판의 싸움을 가리는 초록물결. 언제든 깨져버릴 수 있는 일상의 불안함 위로, 동화 속 세계가 펼쳐진다. 



GREVE IN CHIANTI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주에는 우리가 동경해왔던 완만한 구릉지대가 펼쳐진다. 와인으로 유명세를 얻은 지 오래, 곳곳의 와이너리를 들러가며 넓은 들판을 만나는 투어에 참여하거나, 직접 차를 빌려 시골길을 달리는 여행자가 많다.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는 피렌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어, 상상 속의 전원 풍경을 만나고 싶은 가난한 여행자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 고요함 

조용하다. 혹시나 운수가 사나워 지진 뽑기에 당첨된다면 지금의 고요는 지워지겠지. 차로 몇 시간 떨어진 아랫동네가 그러했듯이. 여행이 끝난 지금, 부서진 어느 마을의 모습이 덧씌워져 마음이 아리다. 관광객이 들고 나는 시간에만 잠시 소란스러워지는, 침묵이 더욱 익숙하고 편안한 작은 마을. 


+ 놀라움

홀로 걷는 길 위에서는 언제나 나를 생각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웹툰과 현실을 오가는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오래전에 그려진 유럽의 풍경화 속으로 건너온 것 같다. 햇볕도 바람도 구름도 나름의 하루를 보낸다. 그들의 세계를 훔쳐보느라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 따뜻함

사라졌던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고요한 마을. 작은 성당의 관리인은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말갛게 웃었다. 고요함에 따뜻함을 얹어 오래된 골목을 걸으면,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소박한 일상. 

아무도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 곳에서 느리게 느리게 마을의 바깥으로 향하면, 온통 초록이다. 저들 중 누군가는 최고급 와인을 꿈꾸겠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르는 일들 때문에 지금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는 없다. 빛나는 지금을 느끼지 못한다면, 때때로 찾아오는 고단함을 견디기 힘들 테니까. 상실을 대하는 마음은 소중히, 일상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히, 반짝이는 오늘을 즐기는 마음은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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