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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09. 2016

그럴만한 이유

시칠리아 최고의 셀레브리티, '타오르미나'

나만 알고 싶은 장소가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기적이라 비난해도 어쩔 수 없는 솔직한 마음. 더 이상 멋진 경치를 호젓하게 바라볼 수 없을지도 몰라. 장사꾼이 몰려와 난장판을 만들지는 않을까? 마구 샘솟는 부정적인 상상. 떠들썩하게 알려진 곳에 대한 선입견도 그와 비슷하다. 썩 내키지 않는다.  



Taormina

시칠리아 동부 해안에 자리 잡은 타오르미나(Taormina)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이탈리아 최고의 휴양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영화 ‘그랑블루’의 촬영지답게 제목과 딱 맞아떨어지는 '파랑'을 볼 수 있다고. 동부의 거점도시인 카타니아(Catania)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으니, 가난한 여행자라해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버스가 구불구불한 산 길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창 밖으로 ‘그랑블루'가 나타났고, 동경했던 에트나 화산까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쓸려 다니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비싸다는데? 버스 안에서 했던 온갖 걱정들.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화려한 풍경이 밀려들어왔다.


뜻밖에도 마을은 어딘가 소녀풍이다. 다른 곳에서는 위세 좋았던 성당마저도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골목 사이로 피어있는 꽃들이 방점을 찍는다. 절벽 마을에 정돈된 상점가는 너무 현대적인가 싶다가도,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 있으니 시대와 타협을 잘했지 싶다.


올리브 나무가 늘어선 정원에서 가느다란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로 은근슬쩍 보이는 바다가 궁금하다. 미지의 세계와 아주 잘 어울리는 '새 파랑'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덕분에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몬 빛깔이 더욱 쨍하게 보인다.


마음 한 구석에는 '상업적인 휴양지'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었다. 십 유로의 입장료 때문에 끝까지 주저했던 원형극장. 그리스 극장이 로마식의 원형 극장으로 다시 태어나 장수하는 중이다.


돋보기로 조준하는 것 같은 햇빛을 견디며 극장의 꼭대기에 섰을 때, 마음이 요동쳤다. 이런 곳을 볼 수 있다니, 흠뻑 젖어 꿉꿉한 티셔츠와 바짝 익은 얼굴 정도야 괜찮다.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는 여기서 공연을 감상했다는 건가? 이따금 한 번씩 불을 뿜는 화산을 배경에 놓고 깊어가는 밤. 뒤통수에는 푸른 바다를 두고, 까만 하늘에 박힌 별을 바라보며 공연을 즐긴다고 상상하니 감동을 너머 질투가 난다.

.


바닷가로 내려와서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오후 한 시에 그늘에 누워있지 않은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기찻길 옆에 놓인 작은 섬은 이름마저 이솔라 벨라(Isola 'Bella', '아름다운' 섬).  길고 새하얀 백사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지막지한 존재감으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붙들어둔다. 물이 빠진 틈을 놓치지 않고 섬 안쪽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잔뜩 부풀어있던 호기심을 채웠으려나.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셀레브리티(Celebrity)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관심을 받는 대상에게 삐딱한 시선이 따르듯, 풍경에 대한 찬사만큼이나 상업적이고 비싸기만 하다는 인식도 강하다. 시칠리아의 다른 곳들에 비하면 사람이 많았지만, 충분히 좋았다. 아주 맛있고 저렴한 생선 피자와 레몬이 듬뿍 담긴 그라니타(일종의 레몬 슬러시)를 먹었고, 잊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무엇이든 모난 구석이야 없겠느냐만은, 부분적인 것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역시, 겪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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