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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Dec 07. 2016

겨울, 강변에서

독일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봄, 여름, 가을 지나 겨울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마저 무채색으로 도배되는 계절. 눈이 내리면 회색빛 거리가 잠시 숨겨질 뿐, 이내 사람들의 발끝에서 칙칙한 색이 드러난다. 힘이 넘치는 날들은 모두 지나가버렸다. 그래서일까, 칼바람이 파고드는 겨울밤에는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진다. 동그랗게 뭉쳐진 기억들이 달력 위를 굴러가는 계절.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남부의 대표 도시인 뮌헨(Munchen) 주변의 여행지로 추천되는 아늑한 도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는 도나우 강을 끼고 자리 잡은 덕분에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화려한 성당(Regensburg Dom, St. Peter's Church)이 잘 나갔던 과거를 대변해준다. 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의 풍경도 아름답다.


눈 내리는,

한 때는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이들로 언제나 분주했을 도나우 강. 대낮에 소낙눈이 내린 강변은 아주 깊이 가라앉았다. 그 누구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 같은 고요함. 모두가 추위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지자, 도시 전체가 겨울잠에 빠져든 것 같기도 하다. 시린 손을 비비면서도 발걸음을 뗄 수 없는 묘한 분위기. 어디선가 느껴지는 익숙한 공기.

Donau River


서늘한 바람과 침묵만이 오가던 그 해 겨울이 눈 앞에 있다.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은 한 해를 채우지 못하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새초롬하게 피어나 만개했던 따스한 날들. 아무리 품에 안아도 시들어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음을 몰랐다. 그저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외딴섬에서 바알간 동백이 피어난 것을 보고 나서야, 되찾은 희망.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병화, '눈이 내리면'


Steinerne Brucke, Stone Bridge


노을 지는,

어스름이 찾아오는 낯선 도시,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삶. 아무리 바쁘게 하루를 살아내도, 가로등 아래 서면 단단히 붙들어둔 마음의 끈이 풀리고 만다. 오래된 거리의 낭만도 잠시, 매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코끝이 시리다.

Old Town


거리의 끝에는 다시 도나우 강.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수면 위에 비치는 건물의 그림자와 하늘의 만남은 탄성을 자아낸다. 오래된 도시가 강과 함께 축제를 벌이는 것 같다. 뮤지컬 공연이 끝을 맺기 전에 화려한 군무와 합창을 선보이는 것처럼,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오늘.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풍경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Donau River


비록 겨울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강’이란 이런 것일까.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여러 번 예고된 결말을 계속 밀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멋진 그림으로,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Donau River


강줄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붐비던 도시는 이제 없다. 좋았던 시절은 과거로 남는다. 겨울이 데려온 회색빛은 붉게 빛나던 기억을 덮었다. 지나간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우리가 빛을 잃은 것은 아니다. 세월을 품은 도시는 다채롭게 반짝이고, 주름이 늘어난 내 얼굴은 조금 더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얼기 설기 쓰러져 가던 내 마음의 버팀목
당신이 녹아 내리고 봄이 온다.

-이상은, '때가 왔다,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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