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 Nov 30. 2016

완벽한 도시는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Adelaide)’

넓은 목초지와 푸른 바다, 야생동물로 시선을 끄는 오스트레일리아. 아름다운 풍경 뒤에 잔인한 역사를 가진 나라 이기도하다. 백인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의 삶이 얼마나 망가졌던가. 인구수를 줄이기 위해 원주민 혼혈아를 부모로부터 격리시켰을 정도였다. 가혹한 정책으로 많은 이들이 사라진 지금도, 끝나지 않는 인종차별. 아름다운 풍경 탓에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이야기.


애들레이드(Adelaide)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대표도시, 애들레이드(Adelaide). 대부분의 주요 도시는  영국에서  건너온 죄수들이 터를 이루었지만, 애들레이드는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곳이다. 자유 이민자들을 위해 개발한 도시. 자국에서 종교의 박해를 받던 사람들과, 새로운 삶을 도모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근교 지역(Barossa Valley)의 와이너리(winery) 투어가 유명한 것도, 당시 독일 이민자들이 들여온 포도나무 덕분이다.  


City

평평하게 잘 다져진 땅 위에 반듯하게 그어진 도로. 적당한 지점마다 공원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둑판처럼 잘 짜인 도시의 생김새나, 곳곳에서 발견되는 학교와 교회에서 모범생의 향기가 났다. 이를 테면 포마드를 발라 바짝 빗어 넘긴 머리에, 나비넥타이를 맨 소년의 모습 같은 것. 내면에는 어떤 차별도 거부하는 정신이 흘러, 다양한 문화예술이 발달했다고 한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함께하는 것일까.


Market

도시의 인상이 제각각이라 해도, 시장은 대개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내는 다양한 소리로 채워진  공간. 특산물에 흥미를 느끼는 건 여행자의 본능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고 한다면, ‘100년이 넘은 재래시장’에서 연상될 법한  ‘오래된’ 이미지는 없다고나 할까.  ‘계획적으로’ 현대화를 시켜왔을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시장은 시장이다. 현대적인 쇼핑몰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고, 대박 세일 현수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서는, 할인은 일부 품목에만 적용하는 상술도 똑같았다.  상점가를 대표하는 런들몰(Rundle Mall)은 가수 벤 폴즈(Ben Folds)의 곡 ‘Adelaide’의 가사에도 등장한다. 그가 호주 사람과 결혼했을 당시, 애들레이드에 살림을 꾸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배경을 모르고 듣는다면, 애들레이드에 환상을 품게 될 지도.

Rundle Mall


Beach

우리가 겹겹이 옷을 껴입는 지금, 조금씩 벗어던지고 있을 남반구. 애들레이드의 여름은 맑은 날이 많고, 기온이 높은 탓에 해수욕에 대한 열망이 크다. 시내 중심에서 해변이 멀지 않기에, 여름에는 바다로 향하는 트램이 더욱 북적인다. 창 밖을 구경하며 30분쯤 가다 보면, 계획도시의 이웃답게 깔끔한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해변의 상점가마저도 잘 짜여 있어서, 내 몸을 자로 긋는 것 같기도 했다.

Glenelg Beach


정리된 거리,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 그리고 바다. 딱히 유별난 풍경은 없다. 하늘, 바다, 모래, 그리고 갈매기. 우리에게 한강 수영장이 있다면, 이곳 사람들에게는 글레넬그(Glenelg Beach)가 있다고나 할까. 오래전에 이 지역에 두 번이나 찾아온 천연두 탓에 원주민들은 엄청난 죽음을 맞았다는데, 고생한 번 안 겪어봤을 것처럼 평온함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솜털처럼 펼쳐진 구름을 본다. 어린 시절에 방바닥에 누워 파란 하늘과 구름을 자주 바라보곤 했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하늘, 지금은 기념사진을 남길 만큼 특별해진 하늘.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니, 그때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의 'Traveling Boy'를 들었으면 더 좋았을 법했다. 연주가 고조되는 후반부에서 먼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Glenelg Beach


애들레이드는  시작부터 자유를 내걸었다. 어느 사회보다 일찍, 제도적으로도 차별을 금지했다. 덕분에 원주민 깃발이나 무지개색을  만나기도 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나 경계선을 넘는 사람들은 있다. 좋은 사회를 완성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 사회도 온갖 ‘차별’로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다. '헬조선'이라는 단어 하나에 압축된 시름. 행복을 되찾고 싶은 이들이 광장을 메웠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마음이 오래도록 빛나기를.

거리의 그래피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