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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Dec 15. 2016

청년의 도시

독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서릿발이 잔뜩 선 겨울,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하루가 시작된다. 청년 백수의 오늘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이력서는 또 휴지통으로 간듯하다.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에서 밀려오는 자괴감.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어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춥다.

꿈은 외롭고
맘은 붐비고

-패닉 ‘희망의 마지막 조각’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찬바람이 부는 거리 위에 젊음이 놓인 도시. 대학 도시라는 소문답게, 골목마다 청년들로 북적인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성(Castle)과 옛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의 풍경은 꽤나 매력적이다. 수많은 여행자가 들고 나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선물을 사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상점가.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쓸려나간다. 거리 곳곳에 걸어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은 가뜩이나 들뜬 이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것 같다. 낯선 거리에 선 백수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작년의 기억은 이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왜 이렇게 다를까.

나는 이렇게 너무 또렷이도 기억하고 있는데
무심하게도 그대 눈빛은 언제나 나를 향하지 않아

-루시드 폴 ‘사람들은 즐겁다



젊음이 가득한 거리와 달리 성곽에 오르는 길은 한산하다. 된바람을 맞는 고성이 쓸쓸하게 느껴졌던 건, 누군가는 비슷한 심정이길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홀로서기에 집착하는 얼굴 뒤에 숨은 외돌토리.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긴 싫었던 날들. 그저 ‘동정’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괜찮은 ‘척’하는 버거움을 견디게 했다.

어디로 모두 떠나가는지
쫓으려 해도 어느새 길 저편에

-토이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옛 지식인의 산책로에 대한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겨울의 푸른색은 나름 신선했지만, 이내 그늘지고 축축한 길이 이어졌다. 날이 아무리 춥다 해도 해가 한창인데, 서늘하고 퀴키한 공기 때문인지 다소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애매한 긴장감이 돌자 오히려 생각이 단순해진다. 걷자. 옛사람들도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할 때는 그냥 이렇게 걸었으려나. 길 끝에서 만난 탁 트인 풍경에 꽉 막혔던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지도.

철학자의 길(Philosophers' Way)로 가는 길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뿐인 줄 알았는데, 빌딩 숲 속에 자리 한 칸 내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 위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포장을 씌워 떠난 여행. 잠깐의 일탈 후에 텅 빈 통장을 끌어안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딱히 별세계를 만난 것도 아니고, 여전히 나의 미래는 물음표로 가득하다. 그래도 도시의 위로 덕분에 그 시절을 잘 건너왔다고.

Karl Theodor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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