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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Oct 12. 2016

적당한 거리

오스트레일리아 '캥거루 아일랜드'

언제부턴가 지구촌이란 말을 쓸 정도로 우리 모두는 가까워졌다. 함께 나눌 음식도 충분해졌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피를 흘리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다. 울창한 숲은 개발의 희생양이 되고,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는 목숨도 늘었다. 우리의 이웃은 모두 안녕한걸까?



Kangaroo Island

나름대로 사람과 자연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외딴섬.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 위치한 캥거루 아일랜드(Kangaroo Island)에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섬이 발견되었을 당시, 본토와 생김새가 다른 캥거루가 살고 있다는 이유로 '캥거루 아일랜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자유로이 활보하기에는 조금 불편하지만, 덕분에 그들의 삶을 지켜줄 수 있다고. 다양한 투어상품이 있으며, 본토의 애들레이드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On the Way

애들레이드 도심에서 꼬박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서야 본토의 끝에 닿을 수 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방송은 호주식 발음까지 얹혀 조각조각 갈라지고, 결국 나는 꿈나라를 오가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마을 소개를 띄엄띄엄 들으며 만난 바다. 걸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배 안에 앉아 펼쳐질 풍경을 상상해본다. 때가 덜 탄 여느 자연이 그렇듯 맑은 물이 흐르는 항구에 다가가는 길.

본토 항구(Cape Jervis)로 가는 버스 밖 풍경
캥거루 아일랜드 내 선착장 (Penneshaw)


On the Bus

부산스러운 항구를 지나면 고요함이 찾아온다. 다들 어디로 숨어들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투어버스는 납작하게 눌린 듯한 섬의 곳곳으로 우리를 실어 날랐다. 멈추지 않는 안내방송처럼 계속해서 바뀌는 풍경.


On the Beach

여름빛을 받은 모래가 하얗게 부서지는 곳.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버스기사님이 가로로 길게 선을 긋는다. 야생의 바다사자가 놀라지 않도록, 이 선을 넘어서지 말아달라고. 한 줄로 늘어서서 바다사자를 훔쳐보며 카메라의 줌을 당기는 사람들. 바다에서 나온 어른 사자가 목청을 높이자, 누워있던 무리에서 꼬마 사자가 일어나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를 피하지 않는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정도는 같은 동물로서 이해해주는 걸까.

Seal Bay


모조리 때려잡아 가둬 놓지 않은 것에 고마우면서도 의아한 마음. 본토에서 원주민을 대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들의 삶은 인정해주고 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무엇도 뺏기지 않고,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조금은 복잡해지는 마음.

Seal Bay


On the Tree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공원. 모두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엉거주춤하게 걷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나무 위에 앉아있던 코알라. 순박한 표정으로 만든 인형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괴팍한 녀석들. 귀찮은 얼굴로 우리를 째려보고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만약 윤회가 있다면, 다음 생에는 온종일 맛있는 풀을 뜯어먹고 산들바람을 맞아가며 낮잠 자는 코알라로 태어나련다.  

Hanson Bay Koala Walk


On the Rocks

대략 만 년 전에 본토에서 분리된 후,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완전히 고립된 땅. 남아있던 원주민도 종말을 맞았다. 그렇게 많은 삶이 피고 지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흘렀던 시간. 세월이 빚어낸 바위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Remarkable Rocks


뉴질랜드에서 먼 바다를 건너온 힘 좋은 바다사자들은 천연 워터파크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바위와 꼭 닮은 까만색 옷을 입었다. 시간은 그들에게 널찍한 썬베드부터 풀장까지 만들어 주었다. 선탠을 즐기다가 파도풀로 뛰어드는 것이 어쩐지 우리와 닮았다.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지 않으니, 우리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도 적당한 거리를 지켜주는 구경꾼들.

Admirals Arch (+Fur Seal)


On Earth

누군가는 험하고 척박한 곳에서 출발해야 하고, 또 다른 이는 축복받은 환경에서 여유롭게 시작한다. 처음부터 불공평하게 주어진 삶이다. 그래서 '모두가'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야기는 책 속에만 있었다. 예전에는 자연환경이, 이제는 돈이 우리를 좌지우지할 뿐이다. 고래를 포획하거나 초목을 불태우는 것도, 반대로 야생의 삶을 보호하는 것도 그의 힘이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면, 그나마 괜찮은 타협이 아닐까. 인구에 비해 땅이 넓은 호주라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인류와 자연이 꼭 필요한 만큼만 서로를 탐하며 살아가게 되는 날, 우리 모두 안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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