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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Oct 24. 2016

원시적인 세계

울릉도 섬 일주 유람선

타지에서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이 땅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원래 다르게 생겨서가 아니라,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너무 많이 뭉개버렸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던 옛시대는 그렇다 쳐도, 지금도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울릉도 섬 일주 유람선

우리의 자연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을 때 찾은 울릉도. 강릉항을 배회하는 사람들 틈에서 종종 외국인이 보인다. 족히 세 시간은 배를 타야 하는 먼 곳을 찾는 이들이 있다고. 영어로 기록된 여행담을 읽었을 때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긴 했다. 그 섬에는 아직 '진짜'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유람선이 왜 하루에 두 번 밖에 운행하지 않는 걸까. 한 번에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코스임을 생각하면, 두 번 운행에 하루가 꽉 차는 셈이긴 하다. 식곤증이 몰려와 대합실에서 졸기 시작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섬을 상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출항은 할 수 있으려나? 생각도 함께 졸다 깨다 하는 사이, 퍼붓던 비가 뚝 그쳐버렸다. 얼마나 세차게 해수면을 두들겨댔는지, 항구 주변의 바닷물이 흙색으로 바뀌었다. 하늘은 짓궂게 방긋 웃는다.

비온뒤의 도동항


오늘의 승객들은 비가 그친 것만으로도 유쾌한 것 같다. 덤으로 얻은 여행 같은 기분에 목소리 톤이 조금씩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갈매기의 대시. 출발과 함께 갑판 여기저기서 날아오르는 새우깡을 쫓는다. 내 옆에서 과자 봉지를 치켜든 꼬맹이의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그게 그렇게 재밌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저 부리에 머리를 채이거나, 똥이라도 맞는 건 아닐지 아찔하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묘한 분위기가 있다. 짙게 뭉쳐있던 구름이 떨어져 나와 어수선해진 자리를 정리하는 듯하다. 배는 저 만의 속도로 나아가면서 차례로 풍경을 바꿔준다. 섬은 뽀얗게 드러난 푸른빛 아래서 쨍한 초록을 드러내기도 하고, 신비롭게 안개를 둘러쓰고 있기도 했다. 구석구석 숨은 마을이 다가오고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변함없이 꾸준한 것은 갈매기뿐이다. 그만두는 녀석들이 늘어가기는 한다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섬의 이런저런 속사정을 전해주는 가이드의 음성이 고조되는 반면, 배는 속도를 줄인다. 쥐라기 공원에 온 것 같았다는 어느 외국인의 여행담이 떠올랐다. 거칠고 뾰족한 섬에서 느껴지는 원시적인 세계. 송곳처럼 날카롭게 서 있는 송곳산, 바람과 파도가 열일한 덕분에 코끼리를 닮아버린 바위. 한참을 머물러주는 유람선이 고맙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줄을 잇는다. 버스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게 되는 얼굴들. 노련한 솜씨로 배를 조종하는 선장님 덕분에 가까이에서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둥그렇고 귀엽게 느껴졌던 관음도를 옆에서 바라보니 또 이렇게 다르다. 초록지붕이 있다 해도 풍랑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옆에서 바라본 관음도


세상의 모든 여행자는 수고로움쯤이야 괜찮다고 여길만한 풍경을 쫓는다. 바다로 뛰어들거나, 알음알음 물어가며 길을 찾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누군가 그들에게 그러할만하다고 추천했겠지. 안팎에서 둘러본 울릉도는, 어떻게 길을 내고 집을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살기에는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렇기에 태고의 자연이 그려지는 섬, 아직 생생한 우리만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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