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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Nov 16. 2016

희망의 거리

이탈리아 '로마'

완벽한 시대는 없었지만, 희망은 있었다. 노력하는 만큼 동경하는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 를 되새겼던가. 인생의 마지막쯤에는 소풍 나왔다 돌아간다는 시구(詩句)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상위 욕구라는 ‘자아실현’이 화두가 되었던 때도 있었는데, 다시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다.


Roma

이름 만으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도시, 로마(Roma). 자동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에서 본 검투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문장의 의미는 기억나지 않아도, 들어본 것만은 확실하다. 가뜩이나 볼 것 많은 이탈리아에, 사연까지 많은 수도라니 일 년 내내 사람들로 가득 메워질 수밖에 없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낡은 것이 눈에 띄는 서울과 달리 새 것이 눈에 띈다. 땅을 팔 때마다 튀어나오는 조상의 흔적 때문에 지하철을 제대로 뚫을 수가 없고, 발굴 비용을 지원해주기 버거운 유네스코가 적당히 하라고 옆구리를 찌른단다. 그래도 소중함을 아는 이들 덕분에 그들의 시대가 전해진다. 마음을 내어 귀 기울이면 조금씩 다가오는 그때 그 시절.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우측)


로마 시대에는 노예에게도 꿈이 있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돈이 계급이 되어버린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개룡남’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로마도 모든 소수자를 품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시대가 퇴보했다고 여겨질 만큼 열린 사회였기에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로마 외곽의 수도교

백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의 식민지들은 매일 같이 탈탈 털리는 삶을 살았다. 몇 천 년 전의 로마는 그 보다 더 가혹했을까? 사실 로마의 식민지들은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다고. 최소한 로마는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다. 다른 것을 인정해주는 삶. 문화적인 차이를 받아들이고, 물질적인 지원까지 더해준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데, 로마의 시민이 되고 싶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믿음

로마의 판테온(Pantheon)은 모든 신에게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의 신을 만났다. 그렇게 오랜 세월 우직하게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신들의 공간. 고대 로마의 신들을 모시고자 지어진 신전은 2천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로마의 땅덩이가 커지면서, 더 많은 신이 함께 머물렀을 것이다. 외관의 장식품이 뜯겨 나가고 기둥의 모양새가 바뀌었지만, 묵직하게 느껴지는 존재감.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공간을 묘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주의 한 지점에 서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질 때면 한 번씩 흘러나오는 안내방송 마저 가볍지 않다. 짧지만 단호한 목소리. 끝을 모르고 날아오르는 비둘기 마저 세균 덩어리 닭둘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건축 기술이 신비함을 더하는 오래된 세계.

판테온 내부 천장


일상

나폴레옹이 그렇게 탐을 내고도 결국은 뽑아가지 못했던 개선문이나 드문드문 남아있는 기둥 틈에서 화려한 시절을 짐작해본다. 쭉쭉 뻗은 로마의 도로를 따라 다양한 문물이 모여들면서, 도시는 요란하고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활기가 넘치는 일상은 자연스럽게 내일에 대한 기대를 부른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정치/경제의 중심지)


일탈

화려한 장식품들은 모두 사라지고, 여기저기 부서진 모양새의 콜로세오(Colosseo). 단순히 웅장한 규모나 기술력 때문에 마음이 끌린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나 검투사의 피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흙수저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서 느껴지는 일말의 따뜻함 때문이었다.


마음

로마의 수도교는 또 하나의 상징이다. 깨끗한 물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선한 정신과 높은 기술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그 곁에는 골프장이 들어섰고, 이따금씩 양 떼가 지나간다. 시대의 정신은 게속해서 지켜졌을까?

로마 외곽의 수도교

유감스럽게도 로마는 영원하지 않았다. 기독교가 세를 넓히면서 신에 대한 균형도 깨져버렸다. 터를 이어받은 이탈리아조차 독재를 겪었고, 부정한 기업인(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이 정치에 뛰어들어 나라를 흔들었다. 사회가 항상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님을 실감한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드는 세상이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바티칸(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내려다 본 풍경


우리의 거리에도 수많은 눈물이 어려있다. 백 년 정도만 반추해도 숨이 막힌다. 일제강점기, 남북 분단, 전쟁, 독재, IMF 경제위기.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이어진 귀한 목숨들이다. 법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부자는 될 수 없어도 소소한 행복은 누릴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노력이 부족했다며 자신을 탓했다. 하지만 선한 사회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이 이득을 보게 되고, ‘정의’의 가치가 추락한다더니, 결국 헬조선이 탄생했다. 매일 같이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흙수저는 암담한 미래를 상상한다. 우리들이 온갖 차별과 혐오에 자괴감을 느끼며 날카로워지는 동안, 정작 누군가는 약자끼리의 싸움을 부추기며 웃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게 절박한 마음이 거리로 나왔다. 광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까?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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