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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Aug 20. 2017

일탈의 기억

울릉도 '오징어 축제'

웃음소리가 높은음으로 꽂히는 곳에 가면 축제를 만날 확률이 높다. 일상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공간이다. 보통은 화려한 장식과 빠른 비트의 음악 위에 주제를 얹어낸다. 유난히 하루가 버거울 때면 그리워지는 그 짜릿한 해방감과 낯선 즐거움.



울릉도 오징어 축제

작년 한 해동안 전국에서 700여 개의 지역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지역 특산물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은데, 울릉도의 저동항에서 열리는 ‘오징어’ 축제도 그중 하나다. 매년 여름휴가의 절정(7월 말~8월 초)에 맞춰 개최되지만, 크고 싱싱한 오징어회를 실컷 먹겠다는 꿈은 내려놓는 편이 좋다. 아무리 잡아 올려도 그 절반은 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마는 혹독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생물 오징어가 귀하다 해도 축제 현장은 활기가 넘친다. 행사 깃발이 주렁주렁 내걸리고, 간이음식점의 현수막이 부둣가를 가득 메웠다. 오징어 관련 체험 프로그램이나 지자체에서 직접 마련한 음식을 나누어 주는 시간도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지역 축제의 풍경과 비슷하다.



거리에는 대형 오징어 풍선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울릉도의 세찬 바람을 버텨내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 웬만해선 끄떡도 하지 않게 다리도 좌우로 쫙 뻗었다. 사람들은 덩치만큼이나 압도적인 귀여움에 반색하며 너나 할 것 없이 몸뚱이를 비빈다. 다리를 끌어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전통 뗏목 경주를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옛 옷을 차려입고 뗏목에 올라탄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민속촌 분위기가 되었다. 역시 시합은 단체전이 쫄깃하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탄식이 오간다. 아는 선수를 응원하는 다른 주민들의 표정도 꽤 신선했다. 연례행사를 준비하느라 꽤나 고단했을텐데 모두가 잠시 삶을 잊은 것처럼 느껴졌달까.



축제의 밤은 몇 배로 뜨겁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칠흑같이 까만 밤이었을 텐데 오늘만은 번쩍번쩍 화려하다. 온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이 몰려나온 듯 북적이는 항구. 낮에 세워둔 간이 무대는 이제야 제 역할을 한다. 불꽃놀이나 주민참여공연과 같은 일정 덕분에 모두가 흥이 올랐다. 오징어 튀김을 앞에 놓고 술잔을 부딪히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춤을 춘다.



어둠을 향해 길게 뻗은 방파제는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촘촘한 불빛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새어 나온 익숙한 멜로디가 앞바다를 건너왔다. 한 때는 락으로 인생을 불태우고 싶었던 섬사람이 못다 한 꿈을 연주하고 있는 걸까.



사실 ‘오징어’나 ‘호박엿'은 여름 축제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모일 만한 때를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와글와글한 맛이 없는 축제는 너무 쓸쓸하니까. 그래도 축제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내내 침묵하던 항구가 들썩이는 모습이나 부둣가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바라본 밤하늘 같은 것들이 한데 섞여, 펑 터져 오른 불꽃처럼 짧지만 강렬한 일탈로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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