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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생각 Jun 24. 2020

공정과 공평 사이에서 교육을 고민할 때

'우는 아이 떡하나 더준다', 그럼 매일 안 울고 착하고 웃는 아이는?

"선생님 저 친구는 정리 안했는데 왜 비타민 받아요?"

"선생님 왜 또 제가 양보해야해요?"


  유치원에서 어린이들과 지내다 보면 위와 같은 얘기들을 종종 듣고는 한다.

상황을 설명하면 그렇다. 정리를 안하는 어린이들이 많자 정리를 모두 하면 비타민을 준다고 약속했다.

착한 어린이들(평소에 비타민이 없어도 정리를 잘 하는 친구들)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정리를 한다.

반면에 정리를 잘 하지 않는 어린이들(비타민이 없으면 정리를 거의 안하는 친구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한 두개씩 정리를 한다.

그리고 나서 결과적으로 모두가 비타민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모두가 비타민을 받아서 기뻐하고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동일한 일들이 반복되면 똑똑한 친구들은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유는 정리를 열 개 한 아이와 정리를 한 개만 한 친구가 똑같이 비타민 한개를 받기 때문이다.

분명 선생님은 공평하게 한개씩 나누어주었는데, 뭔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정리를 많이 한 어린이보다 정리를 적게 한 어린이가 칭찬을 받는 경우도 빈번하게 생긴다.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A어린이: 정리 시간 시작부터 정리를 열심히 한 어린이(장난감 10개 정리)

B어린이: 정리 시간에 몰래 놀이도 하고 장난치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1~2개 정리를 한 어린이


둘 중 어느 어린이가 칭찬을 받았을까?

아마 B 어린이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정리를 한 것에 대해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한 개여도 정리를 해서 비타민을 받았을 것이다.


유치원에서부터 세상은 뭔가 이상하다.

10개를 정리한 친구와 한 개를 정리한 친구가 똑같은 비타민을 받고, 심지어 한 개만 정리해도 칭찬을 받는 친구가 있다.

10개를 정리한 착한 친구들은 이 상황이 반복되면 스스로 문제 의식이 생기고 불만이 생긴다.

그리고 선생님한테 "왜 저 친구는 한개밖에 정리 안했는데 비타민 받아요?"라고 얘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너도 비타민 같이 받았잖아. 우리 모두 나누어 먹어야 맛있지."일 것이고, 잘 납득은 되지 않지만 그냥 다시 착한 아이의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본 그림이 있다. EQUALITY(공평)와 EQUITY(공정)에 대한 그림이다.

아마 당연히 '두번째가 옳은 것이지 두번째가 진정한 공평이자 공정이지'라고 배워왔을 것이다.

공평이란 왼쪽 그림과 같이 동등하게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공정이란 오른쪽 그림과 같이 옳고 그름에 따라 윤리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평과 공정 (출처: https://blog.naver.com/jshssaem/221233344824)


그림으로 보면 누구나 다 '공정(EQUITY)'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림과 상황이 딱 떨어지지 않고, 담벼락도 모두에게 높이가 같지 않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좌우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최대한 공평하게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과연 가정에서 공평하게 대하는 것일까?


분명 형제, 자매, 남매간에도 성향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서로 상대적이다.

더 착하고 순한 아이가 있고 더 별나고 까다로운 아이가 있다.

아마 까다롭고 별난 아이보다는 순한 아이에게 '너가 그냥 먼저 양보해주자'라는 말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공평하게 하려고 노력하다가도, 지치고 힘들때면 착한 아이에게 양보를 권하고 이해를 하라고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착한 아이들은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먼저 사과하며 자랄 것이다.

그리고 우는 아이 떡하나 더준다는 속담이 있듯이, 까다로운 아이에게 손길이 한번 더 가게 된다.


가정에서도,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직장에서도 이 상황은 반복된다.

회사에서도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이 주어지고, 매일 불평하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은 적은 일이 주어지고 편한 일을 하게 된다.


착한 아이,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이 칭찬받고 더 많이 보상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착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이해를 요구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는 항상 그랬듯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우리아이가 '착한 아이'에 속한다면, 우리 아이가 매일 더 많이 정리해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당연하게 바라볼 것인가?

매일 더 많이 정리해도 칭찬도 못받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삶을 우리 아이가 겪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공정'이라는 잣대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정리를 잘했던 아이들도 더이상 정리를 하기 싫어질 때,

형에게 먼저 양보를 잘 했던 동생이 더이상 양보를 하기 싫어질 때,

열심히 공부하던 취준생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보며 노력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

그 순간 순간이 모여 모든 노력하고자 했던 좋은 마음과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마음이 이용당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를 항상 잘하는 친구에게 한번 더 칭찬해주고,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열심히 노력해서 가고 싶은 직장에 취업했을 때 그동안의 노력은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이러한 착한 아이들을 당연하듯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늘은 조금 더 그 마음을 알아주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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