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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Dec 16. 2019

비운의 서비스, 드라마 피버를 아시나요

DIGIDAY 일본어판 번역

"시아에서는 한국이 할리우드입니다"


지난주 기생충이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 된 기사를 보면서 약간 국뽕찬 마음으로 재미있게  본 영상이 있었다.  넷플릭스가 스튜디오 드래곤 지분을 인수하고 제이콘텐트리의 콘텐츠를 3년간 통 크게 사들인 배경은 한국의 콘텐츠가 디즈니와의 전쟁에서 글로벌 유저들을 사로잡을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인데, 나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사실 넷플릭스 이전에도 글로벌 시장에 K 콘텐츠를 알리는 서비스들이 여럿 있었다.


대표적으로  viki는 2013년 라쿠텐에 2억 달러에 인수되어 라쿠텐 viki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중이고,  온디맨드 코리아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오늘 번역 기사에서 다룰 드라마 피버는 이 바닥에서 가장 유명했던 서비스인데 워너 브라더스에 인수된 후 작년 갑작스럽게 문을 닫아 뒷말이 무성했다.


넷플릭스 같은 거대 기업의 적극적인 행보가 콘텐츠 제작사에는 분명 기회이겠지만, 플랫폼 입장에서는 한숨만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고민, 아쉬움에서 1년 전 오래된 기사이긴 하지만 비슷한 고민이 느껴지는 드라마피버 종료 뒷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골라 보았다.



원문 :  큰 손들 만 살아남는 OTT 업계, 희생양이 된 '드라마 피버' (2018.11.19)

https://digiday.com/media/dramafever-casualty-big-money-ott-war/amp/


2013년 10월 10일 밤, 맨해튼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320 스튜디오는 소란스러웠다.

한국 드라마 '상속자들'의 프리미엄 상영회에 150여 명이 넘는 팬들이 몰렸다.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 위주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라마피버' 에게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한국의 대형 스튜디오 화앤담픽처스와 공동 제작한 최초의 오리지널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말 그대로 잔칫날이었다. 오픈 바를 셋업하고 브랜드 T셔츠부터 구글 크롬캐스트까지 각종 이벤트 경품도 준비했다. 에피소드 파일럿판이 상영되는 도중에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http://wehaiyo.blogspot.com/2013/09/the-first-dramafever-meetup-review-and.html?m=1

드라마 피버는 잘 나갔다.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은 급증했고 1년 전 시리즈 B 라운드에서 600만 달러 (약 68억 원)을 조달하며 누적 투자금이 85억 원에 달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드라마의 열성적인 팬덤은 건재하지만, 1만 3천여 편의 에피소드를 12개 국가에 서비스하고 드라마 '상속자들'의 핵심 축을 담당했던 드라마 피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16년에 드라마 피버를 인수한 워너 브라더스가 지난(2018년)  10월 16일 사이트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워너브라더스는 언론 성명을 통해 '비즈니스상의 이유' 라며 '드라마 피버의 핵심인 한국 드라마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서비스 종료의 배경을 설명했다. (워너 브라더스에 취재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정리하자면, 드라마 피버가 문을 닫은것은 오디언스가 사라진 것도, 이익을 내지 못해서도 아니다. OTT 스트리밍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투자 비용이 늘고, 니치한 분야의 작은 서비스들은 생존이 어려워진 것이 이유이다. 모기업은  조 단위 규모의 서비스에 집중하려는 상황에서 고작 100만 달러 규모의 서비스를 생각할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피버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의 말을 빌리자면,  OTT는 이제 '큰 손들의 비즈니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드라마 피버의 팬층은 열성적이었지만 규모는 작았다. 하지만 드라마피버는 게임이론의 알고리즘에서 파생된 얄팍한 미디어 브랜드는 아니었다. 지속 가능한 성공을 목표로 하는 미디어 비즈니스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 미디어가 집중하는 니치 한 분야에는 충성도 높은 팬이 있었고, 이들은 콘텐츠를 위해 언제든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었다.


드라마피버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광고 없는 구독 모델로 월 4.99달러를 지불하면 이용이 가능하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종료 직전 유료 구독 계약자는 4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는 비교적 새로운 시장이라 할 수 있는 니치 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써는 상당한 규모이나, 크런치롤(Crunchyroll: 애니메이션 전문 OTT)에 비하면 작은 숫자다. 크런치롤이 가장 최근에 공개한 (2017.2) 유료회원수는 100만 명을 넘었다.


미국의 컴스코어(comScore)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데스크톱 기준 월간 유니크 시청자 수는 30만-40만 명 수준이었다. 드라마 피버 종료 소식이 전해지자 각종 댓글과 레딧(Reddit)에 많은 팬들이 놀라움과 불만을 토로했다. 버라이어티 기사 댓글은 500개가 넘었고 "드라마 피버를 돌려달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드라마피버는 워너 브라더스 디지털 네트워크 (이하 WBDN) 그룹의 전체 사업에서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WBDN 그룹에는 드라마피버 외에도 DC 유니버스, 부메랑(Boomerang), 필름 스트럭(FilmStruck)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었고, 엘렌 디지털 벤처스 (Ellen Digital Ventures)나 레브론 제임스의 언인터럽티드(Uninterrupted, 스포츠 멀티미디어 플랫폼)와 같은 디지털 미디어 기업도 있다.


드라마피버는 2018년, 2500만 달러 (약 280억 원)의 매출을 낼 수 있었다. 이 중 3분의 2가 광고가 아닌 구독에서 나온 수익이다. 하지만 여전히 흑자를 내지는 못하는 구조였다.


드라마 피버가 설립된 2009년 당시, 한국 드라마의 시리즈 라이선스 비용은 약 8만 달러(9천만 원)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틀 당 100만 달러에서 최대 몇 배가 넘는 수준까지 급등했다.


매출이 2500만 달러 정도인 기업이 하나의 타이틀에 100만 달러를 쓰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 팬만을 대상으로 한 니치 한 서비스라는 점에서 사실상 (드라마 피버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2018년 기준으로 100만~900만 달러의 적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한국 드라마 시장 진출은 드라마 피버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두 기업은 풍부한 자금으로 드라마피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콘텐츠 제작사에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플 콜렉티브(Ripple Collective)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로버트 그린씨는 "넷플릭스의 시대에는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류의 서비스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지만, 넷플릭스의 힘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실제로는 아무도 존재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앱 가운데  원 오브 뎀 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에 주목한 후 한국 드라마 등 K콘텐츠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형 플랫폼보다) 포괄적인 한국 드라마 라이브러리를 보유한 드라마 피버가 오히려 수혜를 입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넷플릭스의 전직 직원은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팬이 되어 더 많은 작품을 보기 위해 드라마피버나 비키를 찾았을 것이다. 드라마 피버는 훌루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지만 시너지를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유저를 대상으로 대규모 마케팅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라고 말한다.


드라마 피버 종료는 한국 드라마 시장을 모르는 이들의 의사 결정 때문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보인 메인스트림 플랫폼들이 점차 늘면서 오히려 한국의 방송국들은 라이선스 비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


KBS, SBS, MBC 지상파 3사는 제휴를 맺고 드라마피버나 비키의 대항마라 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코코와(KOCOWA)를 공동 론칭했다. 연간 구독료 35달러인 비키는 코코와도 시청할 수 있는 연간 100달러의 새로운 구독 요금을 출시했다.


드라마 피버의 전직 직원은 "한국의 방송국은 라이선스 비용을 높임으로써 지배력을 행사하려 했다. 비용이 100만 달러가 넘으면  구독자가 500만 명, 천만명, 혹은 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사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드라마 피버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소유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자금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2016년에 드라마 피버를 인수한 워너 브라더스가 이번에는 AT&T 산하로 편입되었다. OTT비즈니스에 있어서 AT&T가 품은 야심은 워너 브라더스와는 레벨이 달랐다.


워너 미디어의 CEO 존 스탠키는 워너 브라더스와 터너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HBO 브랜드의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HBO MAX)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규모에서 밀리는 D2C (direct-to-consumer) 서비스의 리소스를 통합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료 구독자 40만 명 규모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AT&T 입장에서 아무리 열성적인 팬이 있다 하더라도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 테크 공룡을 상대하는 세계에서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AT&T 고위 임원층들이 관심 가질 만큼의 규모까지 솔직히 드라마피버가 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기업의 문맥에서 생각했을 때 , 굳이 시간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AT&T가 진행하기엔 너무나 작은 규모의 비즈니스였다


게다가 당시 드라마피버는 비즈니스 확장을 위한 인접 콘텐츠나 신규 사업 검토보다는 주 수익원인 한국 드라마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디언스와 수익성 모두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디어 컨설팅 그룹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Creatv Media)의 파운더 피터 캐시는 "콘텐츠 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시장에서는 브랜드 구축이 꼭 필요하다. 새로운 미디어 기업은 틀을 깨는 지속적인 혁신이 있어야 한다" 고 조언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로서의 드라마 피버는 사라졌지만, 회사 자체는 워너 브라더스 내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드라마피버의 임원들은 서비스 성장에 기여했던 기술, 인프라, 모델을 활용해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AMC 네트워크(AMC Networks)의 셔더(Shudder), 워너 브라더스의 DC 유니버스, 터너의 부메랑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WBDN 산하의 워너브라더스 디지털랩 (Warner Bros. Digital Labs) 유닛에는 드라마피버 출신 직원이 2/3를 차지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는 언론 성명에서 디지털 랩은 "WBDN 내 다수의 사업을 지원하는 기술 엔진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버라이어티 기사에 따르면 워너브라더스는 이번 서비스 종료로 드라마 피버 110명 직원 중 22명을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OTT가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면서 테크 기업들에 맞서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이어지고, 비즈니스 성공을 위한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거대 기업들은 사실 수익성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넷플릭스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외부에서 수혈받는다. 이에 비해 드라마 피버는 수년간의 오디언스와 숫자에서 알 수 있듯 이미 임계점에 이르렀다.


"미디어 비즈니스의 변방에 머물렀던 OTT 서비스가 몇 년 사이 주류로 올라왔다. 한편으로는 더욱 어려운 사업이 되고 말았다. 이용자에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정해져 있는데, 콘텐츠 확보를 위한 투자비용이나 유저 획득 비용은 늘어만 간다.  엔지니어나 디자이너, 프로덕트 담당자의 몸값도 덩달아 치솟는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규모의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덩치에서 밀리면 죽는 싸움이다."


글: Sahil Pa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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