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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Oct 03. 2021

일본 미디어가 본 <오징어 게임> 글로벌 신드롬의 이유

<Real Sound > 칼럼 번역

<오징어 게임> 봤어?

너도 나도 이 질문을 했을 때, "내 취향이 아니라서.."라고 얼버무렸었는데, 연휴가 지나고 이 난리가 이어지면서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봐야만 하는' 현상임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약간 숙제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가, 9편 정주행 후 "아 이거 뭔가 남겨야겠다" 싶어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사실상 거의 내버려 둬서 미안한)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마침 제가 좋아하는 일본 콘텐츠 리뷰 사이트 Real Sound에서 <오징어 게임> 현상을 색다른 관점에서 다룬 칼럼이 있어 재편집&번역해봤습니다




원제: 넷플릭스 역대 최고 인기작 등극?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대성공의 비밀.


9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 랭킹 사이트  FlixPatrol에 따르면 9월 28일 기준으로 집계 대상인 124개국 중 83개 국가에서 TV 시리즈 부문 TOP10에 랭크되었고, 이 가운데 78개 국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10월 3일 기준,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K콘텐츠의 전 지구적인 인기는 이미 수차례 목격한 바 있지만, 아시아 작품이 글로벌 랭킹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도 1주일 이상 1위 자리를 지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올해 초 송중기 주연의 영화 <승리호>가 2월 5일 공개 이후 3일간 영화부문에서 3일간 글로벌 랭킹 1위를 기록, 일본 작품으로는 <바람의 검심 : 파이널> 이 6월 공개 직후 글로벌 랭킹 4위에 오른 바 있다.


작년 <기생충> 이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이유, 그리고 이번 <오징어 게임> 대성공의 이유를 이문화(異文化)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이 최근 Variety 지와 진행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황 감독은 2008년 부터 이 작품을 장편영화로 준비했었다고 한다. 당시의 기획 메모에는 미국의 <헝거게임>, 일본의 <배틀 로열>이 있었고,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신이 말하는 대로>, 카이타니 시노부의 <LIAR GAME> 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영화화할 때는 게임을 어린 시절 즐겨했던 놀이로 바꾸고,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의 주제인 "자본주의 사회의 우화와 치열한 경쟁사회"를 구체화 시켰다. 황 감독은  "이들이 참여하는 게임을 매우 단순하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시청자들이 게임의 룰을 이해하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갈등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고 설명했다.



상금은 456억 원, 파스텔컬러로 만들어진 꿈의 나라 같은 세팅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놀이에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어른들. 특히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일본에서는 "다루마씨가 굴렀습니다"  영어권에서는 "레드 라이트, 그린 라이트"라고 부르는, 전 세계적으로도 친숙하면서도 비슷한 놀이가 있다.

나무위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해외에서 부르는 구호.


 1화는 한국의 로컬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클라이맥스에서는 시각적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가져와 생사를 가르는 게임이 펼쳐진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잔인한 전개를 통해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Behind the Scenes] Let the games begin | Squid Game Featurette


이러한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던 것이 바로 프로덕션 디자인이다. <오징어 게임>의 아트디렉터는 "작품에 숨겨진 의도를 시청자 스스로가 찾아보도록 만들고 싶게 세트 디자인을 설계했다" 고 밝힌 바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등장한 기묘한 인형, 마치 웨스 앤더슨(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 영화 같은 파스텔톤의 세트장, 구슬치기 게임의 무대인 노스탤지어의 동네 풍경. 각각의 장면들이 강렬한 비주얼 콘셉트를 가지면서 시청자가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 미국의 <오징어 게임> 작품 화면


초록색 트레이닝복의 참가자와 핑크색 유니폼의 운영자, 그리고 가면을 쓴 프런트맨, 팝 느낌의 로고와 스틸 사진 등 시각적 효과의 강렬함은 이제는 UI(유저 인터페이스)가 미디어화 되어버린 지극히 '넷플릭스스러운' 장치들이다. 예고편도 스토리가 아닌 그림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억하기 쉬운 타이틀과 인형이 미소를 띠며 초록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나뒹구는 첫 화면은 "볼 만하고 재미있는 작품 어디 없나?" 하며 찾아 헤매는 시청자들이 무심코 클릭하기 딱 좋은 강렬함이 있다. 유사한 느낌으로 연상 지을 수 있는 <종이의 집>이 9월 3일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것도 아마 넷플릭스의 계산에 있었을 것이다.


하이 콘셉트(High Concept) 이면서 그 이상의 설명이나 기초지식은 요구하지 않는 로우 콘텍스트(Low context)의 조합은 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의 필승 공식이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로우 콘텍스트는 명확하게 언어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알려졌지만, 콘텐츠의 세계에서는 언어의 장벽 (봉준호 감독이 말했던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보다 시청각에 호소하면서 맥락을 요구하지 않는 직접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종이의 집> <Lupin/뤼팽> 등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비영어권 히트작에서 이러한 특징들을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기생충> <샹치 / 텐 링즈의 전설>과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 로우 콘텍스트 콘텐츠이긴 하나, <기생충>에서도 <오징어 게임>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은유적으로 담겨있어 레이어를 벗겨내면 하이 콘텍스트에 닿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Variety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밖에서는  BTS, <기생충>, <강남 스타일>,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의 엔터테인먼트가  매우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좁은 국토에 5천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북한의 존재로 아시아 대륙과 분절되어 있어  섬나라 근성도 가지고 있다. 스트레스의 한 형태로 항상 다음 위기에 대비하는 방식이 이어져 내려왔고, 이것이 한편으로는 모티베이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라고 밝힌 바 있다.


Variety 기자는 <오징어 게임>의 상금 456억 원과 넷플릭스가 올해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5억 달러 (약 5880억 원)을 같이 표기하면서, 한국 내에서 치열한 콘텐츠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외국자본 세력을 '게임의 기획자'에 빗대기도 했다. 한편 넷플릭스 코리아는 "457번째 참가자입니다"  라며 초록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사진을 공식 채널에 올렸다. SNS에서 바이럴을 만들기 쉬운 것도 하이콘셉트 & 로우 콘텍스트 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이다.

버라이어티 기자는 <오징어 게임>의 상금 456억 원과 넷플릭스가 올해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5억 달러 (약 5880억 원)을 같이 언급하면서, 한국 내에서 치열한 콘텐츠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외국자본 세력을 '게임의 기획자'에 빗대기도 했다.



미국의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시청자 리뷰에는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는 내용들이 꽤 많이 올라왔다. 출연자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강새벽' 역의 정호연 배우는 연기 도전이 처음인 톱모델로 40만 명이었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작품 공개 이후 수십 배 이상 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마치 <기생충> 출연자들이 앙상블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전미 영화배우조합상 (SAG상)을 거쳐 오스카 수상까지 이어졌던 행적을 연상시킨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연기가 평가받는 것은 시청각에 특별히 공을 들인 로우 콘텍스트가 성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작품의 성공에 따른  부차적인 것이긴 하지만, 10월 31일의 핼러윈 시즌의 코스튬에 어울리는 것도 영미권에서는 히트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의상이야말로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는 하이콘셉트 &로우 콘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콘텍스트의 차이를 의식해 상호 이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다국적 기업이나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경우 활용된다. 대개 미국이나 호주, 네덜란드, 독일 등은 심플하면서도 명확하게 액면 그대로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로우 콘텍스트.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중동은 섬세하면서도 다층적으로 분위기를 읽어야 하는 하이 콘텍스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유럽, 멕시코나 브라질과 같은 남미는 그 중간지대라 할 수 있다. 콘텍스트의 차이는 언어 특성이나 역사의 시간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와 <규칙 없음 : No Rule)> 의 공동 저자이자 INSEAD의 객원교수인 에린 메이어는 그녀의 저서 <컬처 맵>의 서문에서 하이콘 텍스트 국가의 문화를 로우 콘텍스트 문화를 가진 국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핵심을 간결히 정리한 바 있다


"눈은 두 개, 귀는 두 개, 하지만 입은 하나. 이 숫자를 기억하면 됩니다"


이 내용은 그녀가 주최하는 이문화 적응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초대받았던 중국 전문가 어머니의 이야기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무언가 전달할 때에는 '상대를 잘 관찰하고, 잘 듣고, 그러고 나서 말을 시작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격언을 콘텐츠 글로벌 전략에 적용해보자면, 우선은 눈으로 보이는 것 (비주얼), 귀로 들리는 것(음악이나 음향)으로 전달하고, 그러고 나서 로우 콘텍스트의 커뮤니케이션을 의식하면서 입으로 (시나리오와 내레이션) 전달할 것. 이것이 넷플릭스가 전 세계로 내보내는 로컬 콘텐츠에서 보여준 성공의 공식이라 할 수 있다. 하이 콘셉트의 프로덕션 디자인, 눈을 사로잡는 키 비주얼, 누구에게나 귀에 꽂히는 음악을 활용한 사운드트랙, 행간을 이해하는데 에너지를 쏟을 필요 없는 알기 쉬운 전달 방식. 하지만 깊게 들어가면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스토리. <오징어 게임> 은 2021년의 최신판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 결과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글: itsuko hirai

번역: miho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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