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붕어빵을 찾은 까닭은

by 허미희

지난겨울, 다섯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친정에 도착한 늦은 밤이었다. 어둡고 컴컴한 넓은 집에 홀로 남은 엄마가 안방에만 오롯이 불을 밝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떠난 빈집에 남은 엄마의 쓸쓸함이 제일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와 단 둘이 자고 일어난 아침, 나는 막내딸 근성으로 이불 밑에 그대로 있는데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물미역을 바락바락 주물러 대며 씻는지 마루를 지나 안방 문틈으로 바다 내음이 소롯이 흘러 들어왔다. ‘음, 좋다.’ 하며 친정에 온 맛을 즐기고 있는데 현관문이 덜컹 열리며 큰언니가 등장했다.

“야, 나이 든 엄마가 일하고, 젊은 넌 누워 있나?”

큰언니의 밉지 않은 핀잔에 나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부랴부랴 언니가 거들어 밥상을 금시 들여왔다. 그제야 이불을 걷고 상 앞에 다가앉은 나는 짭조름한 물미역 반찬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점심은 나가서 먹자. 엄마가 살게.”

지척에 사는 큰딸, 작은 딸에게 안 쓰는 선심을 멀리서 가끔 오는 막내딸에게는 잘 쓰는 엄마다. 상을 물린 우리는 방안에서 포트로 물을 끓여 달달한 커피믹스를 한잔씩 손에 들고 마셨다. 그리고는 따끈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데, “엄마!” 하고 이번에는 작은 언니가 공기를 ‘쨍’ 가르며 등장했다. 친정 대들보가 들썩거릴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귀가 약간 어두워진 엄마는 큰언니와 내 목소리는 간혹 못 알아듣겠는데 작은 언니 목소리는 잘 들린단다. 워낙 짱짱하고 기운 찬 목소리니까.


예전부터 항시 작은 언니의 등장은 우리를 화들짝 깨우는 효과가 있었다. 아버지 계실 때도 언니만 오면 아픈 아버지까지 눈에 생기가 돌며 활짝 커졌으니까. 언니가 몰고 다니는 생의 기운은 착 가라앉은 친정의 분위기를 살리는 묘약이었다. 오자마자 마루를 걸레질하거나 시원한 물줄기로 마당을 씻어 내리며 잔소리를 퍼부어대면 늘어져 있던 우리는 갑자기 충전 완료된 배터리처럼 벌떡 일어나 분주해지곤 했다.


작은 언니는 점심은 나가서 먹자는 말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폭풍 제안을 했다.

“고기 몇 만 원어치 사서 큰언니 집에 가자! 언니 집들이도 못했는데, 오늘 하자. 엄마!”

일곱 자식 바람 잘 날 없었기도 했고 또 집집마다 미묘한 갈등은 있기 마련이라 큰언니 집들이를 못하고 어정쩡하게 지낸 사연이 있었다. 간만에 내려온 나도 선뜻 말을 못 꺼내고 어떡하나 생각하던 일이었다. 작은 언니는 엉킨 실타래 뭉치의 중간을 툭 끊어내고 새 실마리를 찾아 타래를 감아 매는 시원스런 면모가 있었다. 그녀 말에 푹 퍼져 있던 우리는 더운 여름날 소나기 맞은 들풀처럼 통통하게 살아나며 서둘러 얼굴에 분을 찍어 바르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모양내고는 썰물 빠져나가듯 우르르 집을 나섰다.

큰언니 차에 다들 올라타고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먼저 정육점에 들러 쇠고기를 넉넉히 사고 나머지 먹거리를 사려고 마트 앞에 한 번 더 멈췄다. 차에서 내리던 작은 언니가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큰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언니 니는 저기 포장마차에 가서 붕어빵 오천 원어치 사 온나. 마트 장은 나 혼자 볼게.”

영문을 모르는 큰언니는 떨떠름하게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녀들이 제 갈 길로 총총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모처럼 폰으로 <흘러간 노래>를 검색하여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얼마 안 있어 언니들이 겨울 찬바람을 몰고 차안으로 쑥 들어왔다. 큰언니는 부르릉 시동을 걸고 작은 언니는 장바구니를 뒷좌석에 내려놓는데,

“3kg짜리 소금이 있더나?”

엄마가 물었다. 소금을 문지방에 놓고 밟고 들어서야 액운을 막는다며 당신이 당부한 거였다. 부스럭 부스럭 물건을 뒤적이던 작은 언니가, “응, 엄마” 대답하면서 뭔가를 몹시 찾는 듯 했다.

“언니야, 붕어빵 어딨어?”

“없는데?”

“응? 붕어빵 안 샀나?”

“응, 사람들 줄이 길어서 그냥 말았다.”

“아니, 기다렸다가 사와야지 그냥 오면 어떡해? 그러고는 나한테 온 거야? 마트 장은 나 혼 자 봐도 되는데 붕어빵이나 제대로 사왔어야지!”

작은 언니는 갑자기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큰언니를 다그쳤다. 착한 대신 어수룩한 큰언니를 이겨먹는 왈패 작은언니의 잔소리는 아무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셋째 딸인 내가 나설 타이밍이 바로 요 때다.

“아, 잠깐! 언니야, 붕어빵이 그렇게 먹고 싶나?”

“아니, 내가 붕어빵이 먹고 싶어서 그러나? 아버지가 붕어빵을 먹고 싶어 했다고!”

순간 차 속에 있던 우리는 ‘멍’ 해졌다.

“아, 버, 지...?”

‘여기서 아버지가 왜 나오나?’ 하는 뜻의 기막힌 이 한마디에 작은 언니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속상한 마음을 쏟아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집에 가는데 붕어빵이 먹고 싶다 안하나? 그래서 차를 타고 시내를 빙빙 도는데 그날따라 붕어빵 장사가 보여야 말이지! 결국은 못 먹고 집에 왔다 아이 가?”

우리는 그만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할 말을 잃었는데, 그녀는 다시 목소리에 핏대를 올리며,

“봐, 딸 세 명이 모인 자리면 아버지도 같이 와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붕어빵이 있어야지!”

왈가닥 언니의 동화 같은 상상력에 나는 그만 ‘풋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와 큰언니도 “허, 참 그거” 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가만, 저기 포장마차가 하나 더 있네? 큰언니! 저 쪽에 차 좀 세울 수 있겠어?”

작은 언니 잔소리에도 차는 굴러 가는 중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길 왼 편에 또 하나의 붕어빵 장수 포장마차가 산타할아버지처럼 떡 하니 나타나 있었다.

눈이 반짝 뜨인 언니는 갓길에 부드럽게 차를 대고 포장마차로 총총히 걸어갔다. 얼마 안 있어 구수한 붕어빵을 들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왔다. 작은 언니에게 당당히 건네주며,

“아버지는 좀 식은 붕어빵을 먹더라도 우리 먼저 하나씩 시식하는 건 괜찮겠지?”

작은 언니는 그제야 맘이 놓이는지,

“그래, 나중에 고기 구울 때 아버지 붕어빵도 두어 개 담아 놓으면 되니까!” 하며 명랑하게 붕어빵을 손수 나눠 주었다. 운전하는 큰언니도, 메들리로 흘러나오는 <옛 가요>에 흥이 난 엄마도 구수한 붕어빵을 먹기 시작했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다’는 노래에 나이 여든을 넘긴 엄마는 세월을 더듬고... 내 머릿속은 아버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니, 우리 모두는.


큰언니 집에 도착 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엄마가 소금봉지를 현관 문지방에 내려놓더니 두 발로 올라서서 꼭꼭 밟으며, “좋은 일만 들어가고 나쁜 거는 이 문지방을 넘지 않게 해주이소.” 하며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정성껏 빌었다. 나도 그 위에 올라서서, “이하동문입니다.” 하고 장난스레 말했지만 마음으로는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진심어린 기도를 드렸다.

하얀 접시에 붕어빵 세 마리를 나란히 올려놓고, 우리는 굵은 소금을 솔솔 뿌려가며 쇠고기를 구웠다. 큰언니가 잠이 안 올 때 한잔씩 한다는 싸구려 와인을 꺼내고 그 달달한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딸 셋은 즐거운데, 그날따라 성격 시원한 우리 엄마가 그저 조용히 말이 없었다. 큰언니가 자꾸 건네주는 고기를 "됐다." 하며 몇 점 먹던 엄마가 붕어빵을 말끄러미 쳐다보다 그만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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