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핫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에 바람도 잠든 긴 복도가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옆 반 선생님 웃음소리였다. ‘누가 왔기에 저리 크게 웃을까?’ 의아해하는데 조금 있다가 열린 교실 앞문 쪽으로 누군가 쓰윽 지나갔다. 저 사람인가 싶어 목을 길게 뽑고 복도 창가 틈새로 언뜻언뜻 비치는 행인의 얼굴을 살폈다. 창문 시트지 틈 사이로 지나가는 이의 머리꼭지가 보였다. 숱이 적어 반질반질한 것으로 보아 교장 선생님이 틀림없었다.
‘아, 옆 반에 잠깐 들르신 모양이구나.’
옆 반 선생님은 교육경력이 많은 여교사다. 쉰을 갓 넘은 나보다 열 살이나 위였지만 체력이나 신체 유연성으로 치면 오히려 스무 살은 족히 더 젊은 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 초등학생들의 일기, 숙제, 생활 태도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기록하는 것은 물론, 모든 행사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진행하여 빈틈없이 학급을 운영하기로도 정편이 나있는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와 가끔 수다 떨 때면 젊은 우리보다 더 우스갯소리를 잘했고 시원한 폭소를 터뜨리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활달한지 보는 우리가 다 절로 흥이 났다. 교장 선생님은 그런 그녀와 동갑이었다. 그는 곧 다가오는 여름방학에, 그녀는 한 학기를 더 근무하다 겨울방학에 은퇴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 입장이니 서로의 처지와 감회를 그 누구보다 공감하는 두 분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시끌벅적했던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교사들은 모두 제 교실에서 고치 속의 누에처럼 들앉아 저마다 업무를 보느라 사방이 적막한 시간이었다. 컴퓨터에 지친 눈을 쉬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섰다가 옆 교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가 뭔가 ‘톡톡톡’ 문자를 찍고 있었다. 슬며시 다가갔다.
“뭐 하세요, 선생님?”
그녀는 화들짝 웃으며 어서 오라고 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나는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지방 교대를 나와 경기도로 올라온 나는 대학 동문들을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올해 이 학교로 전근 와서 처음으로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지리산 자락의 쾌활한 면모를 지닌 선배는 공적으로는 격 있는 선비 자세를 잃지 않았지만 나에게만은 산골 소녀 같은 마음을 보여 주곤 했다.
“문자 보내고 있어, 들어 봐. -교장 선생님, 연수는 즐겁게 받으시는지요? 교장 선생님 안 계시는 학교는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당-.”
코맹맹이로 몽롱하게 낭송하는 문자를 듣다가 나는 그만 중간에서 정신이 엉뚱한 데로 빠져 버렸다.
‘아니, 쓸쓸하다니? 교장이 없으면 우리야 속 편한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깔깔대던 그녀는 나를 믿고 두 분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그녀가 발령 받은 학교에 인사를 왔더니 옛 친구가 교무부장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도 곧 다른 학교로 전근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 친구는 자기 대신 교장을 도와 학교 운영에 힘을 보태 줄것을 당부하였다. 인품이 좋은 친구였던 만큼 그녀가 섬기는 교장을 신뢰할 수 있었고 또 학교에 도움이 되어 달라는 교장의 특별한 부탁을 겸해서 받기도 하였다. 이후 측근에서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부임해 와서는 줄곧 부장 업무를 맡으며 음으로 양으로 학교 운영에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되어 드렸다고 하였다.
올봄 전근 온 내가 보기에도 두 분은 어딘가 서로 각별한 데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 우리 동학년 모임에도 교장 선생님을 오시라 청하여 그가 외롭지 않게 배려하였다. 간혹 그에게 어려운 고민이나 스트레스 상황이 생겼을 때는 남몰래 말동무가 되어 드리기도 하였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딱딱한 얼굴로 업무를 총괄하던 교장 선생님도 그녀를 대할 때만큼은 안면근육을 풀어헤치고 느슨한 웃음을 짓곤 했다. 나는 그런 두 분의 처신에서 서로 살뜰하게 챙긴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다.
교장 선생님 앞에서 소녀같이 환하게 웃는 62세의 그녀를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이벤트를 생각했다. 맘은 있어도 오붓한 자리 한 번 만들 수 없는 고지식한 분들이었다. 그런 심중을 헤아려 늦기 전에 작은 추억 하나라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다람쥐처럼 두 분 사이를 오가며 7월 7일에 내가 단골로 드나드는 민속주점에 막걸리 약속을 잡았다. 음력 칠월칠석날은 아직 달포를 남겨 두고 있었지만 나는 내 멋대로 그날을 ‘그들의 칠월칠석날’이라 이름 지었다.
그날 퇴근길은 나름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답게 보슬비가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산기슭에 접한 조그만 오두막집인 주막은 여닫이창 두 개를 바깥세상을 향해 나란히 열어 두고 있었다. 돌쩌귀가 달린 묵직한 나무문을 끼익 밀고 들어섰다. 소쿠리며 짚신이며 조리개 같은 민속품들이 오래된 흙벽에 걸려 집과 함께 낡아가고,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에는 하얀 한지 갓을 둘러쓴 여러 모양의 백열등들이 멋스럽게 달려 있었다. 어릴 적 찾아간 시골집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에 두 분은 어린애마냥 좋아하였다.
열린 창으로 부스스 내리는 비도 주막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가만가만 귀 기울이던 시간.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얼큰한 바지락국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잔에 가득 부어 가며 술잔을 기울였다.
“허 선생은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주인장 표정을 보니.”
“짧은 산문이긴 하지만 작품이 끝나면 그 설레는 마음을 감당치 못해서 여기 와서 한 잔 걸치지요. 소설가이신 교장 선생님은 그 마음 당연히 아시겠지요?”
“하하, 그렇지요. 그 마음 알지요!”
“아니, 옛날에 동화를 쓰셨다는 건 아는데 소설이라니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교장 선생님이 속을 터놓았다.
“그 옛날 강원도 정선 탄광촌에 발령이 났지요. 관사에 있는데 해가 지면 오갈 데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동료 교사가 나를 데리고 어델 가더랍니다. 가보니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를 합디다. 그들을 보며 나도 글쓰기에 마음을 두었지요. 가끔은 계곡에 가서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낭만도 즐기면서요. 이원수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아동문학으로 등단을 하고 또 소설을 써 보았지요. 첫 작품이 바로 강원일보에 당선 되었더랬습니다.”
“선배님도 문학에 관심이 있었지요? 그만 풀어 놓으세요.”
“아니, 박 선생님도요?”
그러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내가 설명을 곁들였다.
“여고 시절엔 편지 대필 전문이셨대요, 교대 다닐 때는 황순원 문학상에 도전해 본 적도 있으시고요. 그때는 글을 잘 쓰셨다는데 시집 와서 살림 불리는 재미에 그만 글을 놓았다지 뭡니까?”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는 그녀를 빗댄 나의 넉살에 두 분은 박장대소하였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드디어 흥이 났다.
“교장 선생님, 우리 교대 다니던 때 생각나세요? 그 시절 다방에 앉아서 이런 노래 부르지 않았어요?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그러자 교장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하고 받아 부르셨다. 이어 이중창으로 “약속 시간 흘러갔어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화음을 맞추었다. 그러다 어느새 감정이 무르익어 손 박자를 함께 저으며, “아, 사랑이란 이렇게도 애가 타도록….” 하는 부분에선 애절하기가 절정에 달하였다. 나는 <찻집의 고독>이라는 가요가 마치 가곡이라도 되는 듯 그들의 화음에 빠져들었다. 비 나리는 주막에 문학이 있고 낭만이 있고 두 마음이 합하여 엮어 내는 아련한 노래가 있으니 멋모르는 내 눈에도 노년의 은밀한 우정이 참 멋져 보였다.
그렇게 식을 줄 모르던 교장 선생님과 여선생님의 추억 되살리기에 막걸리 항아리는 금세 동이 났다. 항아리를 두어 번 더 채우고 비운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도 헤어짐이 아쉬워 우리는 주막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가는 비가 소리 없이 나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먼저 말했다.
“난 하늘만 쳐다보면 언제나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마냥 떠나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이제는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삶을 살아야지요. 나도 원고지에 다시 소설을 써볼 참입니다.”
가로등 아래 수줍게 마주 섰던 두 분은 함께 우산을 받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칠월이 깊어지고 여름방학이 되자 교장 선생님이 먼저 은퇴를 하고, 이어 겨울방학에는 여선생님이 학교를 영원히 떠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뒤 주막의 문마저 슬그머니 닫혔다. 지금쯤 아마 그는 소설을 집필하느라 칩거 중일 것이고, 전원생활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그녀는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비행기 트랩에 종종 오를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행복한 날들 속에 서로를 영원한 신사와 숙녀로 추억하며 슬며시 웃음 지으리라 생각한다. (201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