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머리핀을 하나 사다 드려야 되는데요...”
“아닙니다. 시장에서 산 싸구려 핀입니다. 괜찮습니다.”
가볍게 스치며 가버린 나를 한참 바라보던 남자는 그 뒤에 다시 말을 붙여 왔다. 차나 한잔 하시면.. 그런 남자에게 나는 의외의 눈빛을 보내며 무언의 거절을 하였다. 이미 우리를 곁눈질 하는 다른 회원들이 고개를 빼고 안보는 척 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며 3년 가까이 스치기만 했던 사람이 ‘그 남자’로 각인된 건 바로 며칠 전이었다. 긴 머리칼을 감아 집었던 핀을 풀어 머리맡에 놓고 매트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순간 벽에 기대어져 있던 봉을 집어 들던 그 남자의 실수로 다른 봉 하나가 넘어지며 머리맡의 핀 위로 떨어졌다. 철커덕 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니 핀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난 재빨리 “죄송합니다. 핀을 여기에 놓아 둔 제 탓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라며 부서진 핀 조각들을 주워들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남자는 무어라 한마디도 못하고 멈칫하다 지나쳤다. 그 일이 있은 후 오며 가며 마주치던 남자는 가볍게 목례를 보내 왔고 나는 별 뜻 없이 인사를 받아 주며 운동을 다니던 참이었다. 그러다 차를 마셨으면 하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바람이 별거야? 그렇게 시작되는 거지!”
얼마 후 나의 시큰둥한 설명을 들은 친구는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럴 수도.. 모르고 지내던 때보다 자주 마주치면서 내 주위를 맴도는 그 남자를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고모아재 생각이 났다. 아재도 그랬을까? 유독 추위에 떨며 일을 마친 날, 식당의 그 아낙이 보글보글 끓는 노릇한 계란찜이라도 하나 더 얹어 주었을, 그런 실없던 일로 사랑이 시작된 걸까?
고향에 내가 자라던 집은 아재가 지은 집이다. 골목길 안에 살다가 무슨 연유인지 살던 집을 팔고 그 집의 단칸방에 잠시 세 들어 살았다. 그렇게 마련한 목돈으로 아버지는 큰길가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그 때 아버지는 봉술이 아재에게 집 짓는 일을 맡겼다. 그 동안 방 한 칸에 아홉 식구가 살며 여름을 나고 가을 지나 초겨울에 아재가 지은 파란 기와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아재가 지은 집이니 튼튼하고 말끔하여 하자가 없긴 했겠지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닌데다 일에 빈틈없는 엄마가 한 가지라도 다른 주장을 안 한 것을 보면 아재가 하는 일이라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고 보는 듯했다. 아재로선 최선을 다했을 터이니 더 바랄 게 없다 뭐 그런 뜻이 어른들 사이엔 있었다. 봉술이 아재는 그렇게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하얀 얼굴에 언제나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고 계셨으며 말씀도 일정한 톤으로 잔잔히 하셨다. 그러면서 마음씨가 꾸밈없이 편안하여 “미희 왔나?” 하는 한 마디에도 무언가 깊은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재는 장구 장단도 잘 하였다. 내 어릴 적에는 집집이 돌아가며 친척들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음식을 장만해선 한판 어우러지게 노시는 일이 잦았다. 방안 가득 아저씨들이 앉으셔서 식사 하시며 술을 드시다 젓가락 장단이 무르익으면 봉술이 아재가 장구를 매고 쓰윽 마루로 올라왔다. 그러면 엄마나 동네 아낙들이 호호호 웃으며 큰상을 걷어 내고 작은 술상을 여럿 봐 놓았다. 한가운데 들어서신 아재가 장구를 치며 좌중을 휘저으면 앉아서 젓가락 장단 하던 어른들이 일어나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아버지도 박수 장단을 보태며 이 흥을 어떻게 돋울까 엄마에게 술을 더 내와라 눈짓하였다. 그런 아재가 <해운대 엘레지>를 부르면, 우리에겐 나훈아 보다 아재가 더 멋져 보였다. 덩치 큰 고모가 마루에서 흐뭇한 초승달 눈을 하고 남편을 지그시 바라보던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과연 어질고 흥 있으며 성실한 남편을 둔 아낙의 자랑스러움 같은 게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떠난 데다 읍내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친척들이 흩어져 자주 뵐 일이 없어졌다. 동네 어른들이 집에 모여 왁자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술잔을 주고받는 일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식당문화가 번창해지면서 싸게는 짜장면 집, 비싸게는 횟집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연히 친척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얼큰히 취하여 장구 장단에 춤추던 모습은 빛바랜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던 몇 년 후, 퇴근해서 배가 고파 냉장고를 뒤지고 섰는데 엄마가 들어서며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구, 윤이가 아재를 살렸다.”
난데없는 말에 냉장고 문을 열고 선 채 엄마를 바라보았다.
한낮이었다. 동생 윤이 새벽같이 일어나 아버지 정미소 일을 도와 드리고 막 씻으려던 참이었다. 청년이 집에 있을 리 만무한 고요한 시간대에 정적을 가르며 전화기가 쩌렁 울렸다.
“윤아, 아재가 농약을 마셨다!”
고모의 외마디 비명에 윤이는 옷을 입고 튀어 나갔다. 정미소 앞에 대어놓은 트럭을 몰아 100미터 거리의 고모 집으로 가서 축 처진 아재를 싣고 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다. 신속한 대처에 아재는 위세척을 받고 간신히 살아났고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는 한숨 돌리며 사연을 풀어 놓았다.
아재는 다섯 명의 자식들이 다 자랐을 즈음 읍내 얌전한 식당 아낙에게 마음을 두었다. 그 아낙도 무능한 남편에 길거리 포장마차로 근근이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다 간신히 식당 한 칸 마련한 음전한 사람이었다. 지방선거 참모로 뛰어다닐 정도로 기질이 강한 고모에게 참견 하나 않고 조용히 가정을 거느리며 살아왔던 아재였다. 그런 아재는 그녀의 작고 여린 손으로 차려주는 밥상이 따뜻하고 좋았다. 거기까지였다. 눈길 그윽한 아재와 얌전한 그 여자가 고작해야 식당 문 닫은 늦은 밤에 아재의 연장이 가득 든 낡은 트럭에 나란히 타고 시골 논둑길을 덜커덩거리며 밤바람을 쐰 것 밖에. 그러나 좁은 동네 아낙들의 입방아는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시장에 드나들다 식당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을 수상쩍게 엿본 아낙들이 하나, 둘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수군거림은 작정한 냥 고모 귀에 날아들었다.
체격은 더 컸지만 사람됨이 넉넉했던 남편 옆에만 서면 다소곳한 여자가 되었던 고모였다. 그런 고모에게 소문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 날, 저녁상을 봐 놓았는데도 남편이 오질 않자 다부진 몸집의 여장부 같은 고모는 조금도 참을 수가 없었다. 밤바람을 휘젓고 시장통 식당으로 치달았다. 식당 앞에 세워져 있는 남편의 트럭을 본 순간 설마, 설마 하던 불안이 분노로 변했다. 일을 마친 아재가 소주 한잔 기울이며 그 여자의 밥상을 받고 앉아 행복에 젖은 밥숟갈을 입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드르륵 유리문이 열리고 고모가 들어섰다.
“뭐하는 기요? 여그서!”
남편을 매섭게 쏘아 본 고모는 놀란 사슴 눈을 하고 벌떡 일어선 아낙의 작은 어깨를 바투 잡고 바닥으로 후려쳤다. 그것도 분에 안 차 그녀의 머리칼을 쥐고 식당 유리문 밖으로 끌어냈다. 장터 사람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빙 둘러서게 되었다. 갑자기 닥친 일에 숨이 턱 막힌 아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구경꾼을 뚫고 들어가 고모의 손목을 확 낚아챘다. 손아귀에 뜯겨져 나온 아낙의 머리카락을 보며 눈자위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고모를 잡아끌고 트럭에 올라탔다.
집에 돌아온 아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자식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평온했고 고모도 애들 앞에서는 함구하였다. 아무렴, 내 남편 잘못이려구? 그 년이 여우 짓을 했지! 장부 같은 고모의 자존심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단순화시켰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일 나간 남편의 이부자리를 보며 ‘이제 더는 딴 짓 못하겠지.’ 안심하며 이불을 탁탁 개켰다. 그리고는 지척에 사는 여동생네로 가서 그 누구에게도 풀 수 없는 하소연을 하였다. 그제야 와락 무너져 내린 고모는 눈물 콧물 흘리며 한바탕 울고는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녹색 철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댓돌에 남편의 신발이 보였다.
“보이소! 일찍 들어 왔능교?”
자신의 난동에도 잔잔한 호수처럼 말없는 남편을 보며 외려 후회가 밀려들던 참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훌러덩 마루에 올라서서 방문을 열었다. 순간, 널브러진 남편과 그 옆에 뒹굴고 있는 농약병을 발견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한동안 고모 네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그 일을 얼른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듯 더 태연히 살았다. 그러나 이따금 집에 들르는 아재의 얼굴은 언제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람 피워서, 자살을 시도했대서 부끄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사랑을 잃어서 슬픈 얼굴이었다. 빈 포대처럼 풀썩 꺼질 듯한 아재는 수척해진 얼굴에 수염조차 정리하지 않았다. 존재 없는 사람처럼 삭막한 얼굴을 한 아재. 그런 아재가 우리 집에 휘적휘적 걸어오시면 나는 얼른 일어나 현관 아래에 맨발로 내려서서 “아재, 오시니껴?” 허리를 낮춰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 아재는 내 발치에 시선을 둔 채, “어? 미희가 집에 있었구나!” 대답하였다. 어른들에게 자리를 비켜 아래채로 내려가며 ‘아재가 그 여자를 정말 사랑 했구나’ 생각하였다.
고향에는 이제 아버지도 안계시고 아재도 안 계신다. 이렇게 돌아가실 걸, 고모가 아재를 그 여자에게 보내 드렸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러기 전에 아재가 그 여자를 다시 찾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을 것이다.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무능하지만 정이 든 남편이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를 보고 아재는 말없이 돌아 섰을 것이다. 그보단 차라리 똑똑했던 고모가 아재의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려 주었다면... 아재는 잠깐 마음으로 사랑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단념하였을 것이다. 처음엔 황망한 마음을 묻어 두기에 정신이 아득했겠지만 가족이 주는 안정감에 점차 숙연해졌을 테고. 어느덧 야무진 아내가 아이들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보며 다시 장구채를 잡으셨으리라. 그리고 동네마다 평온한 가족이 깃들일 집을 지으러 다니셨으리라. 고모는 잠시 잠깐 태풍에 가슴이 쓰라렸겠지만 그 뒤 내내 행복하였을 터인데 참으로 쓸쓸한 일이 되었다.
나는 바람이 별거냐는 친구의 말을 들은 이후 헬스를 그만 두었다. 더디 갈 것같은 시계바늘이 잠깐 한눈 판새 훌쩍 시각을 넘어가버리듯, 어느 쓸쓸한 날에 나도 모르게 내가 모르는 세상속으로 한 발 내딛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네 시작은 미미하나 나중은 장대하리라’ 는 성경구절 말씀이 꼭 믿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미미한 사랑의 씨앗이 자라나 어느새 나를 휘감아 버리는 날이 온다면! 아니, 남편의 그 날에 내가 고모처럼 실수를 한다면!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아니 그 누가 난 아니라고 장담하겠는가? (2018.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