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났거나 성기능 장애가 왔거나 둘 중 하나야."
바람이라는 친구의 말에 게슴츠레 내리깔고 있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뭐라구? 어째서?"
안 그래도 죽을 맛인데 괜히 친구에게 말을 하였다가 거머리 한 마리가 머리에 철퍼덕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떨쳐버리려고 애써 머리 굴려 반박했다.
"마누라한테 안 되는데 어떻게 다른 데 가서 바람을 피워?"
"얘가 너무 모르네? 마누라한테 안 돼도 다른 신선한 여자를 보면 되는 게 그거야! 그러니까 나이 80에도 바람이 난다잖어?"
남자 심리는 남자가 안다고 초등학교 동기 남자가 해 주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 그래? 그럼, 바람 난 건 어떻게 알지?"
"일단 출장이 잦거나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옷차림이 바뀌지. 양복 스타일에서 캐주얼로 또는 캐주얼에서 양복으로! 그리고 화장실 갈 때나 밖에 잠시 나갈 때도 폰을 손에서 놓질 않아."
해보지 않으면 저리 매끄러운 설명을 할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유창한 설명에 내 머릿속은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리플레이 시키느라 정신없었다.
"아, 알았어. 야, 근데 바람은 아닌 거 같애. 출장도 별로 없었고 술도 진탕 마시고 들어온 게 어젯밤 하루야. 옷은 맨날 공장 작업복이고, 폰은…, 에이, 폰은 맨날 페이스 북에서 신문 기사를 읽는다더라. 야, 속 시끄러워, 끊어!"
친구에게 남편 바람난 걸 인정하기는 자존심 상하므로 애당초 책잡힐 단서를 잘랐지만 더럭 겁이 났다. 주말마다 사무실에 가서 외박은 했지! 일하리라 철석같이 믿지만 그 자리에 나 아닌 다른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저녁 약속이 있으면 사전에 어김없이 일정을 일러주던 남편인데 엊그제는 왜 말 한마디 없이 술을 그렇게나 퍼마시고 들어왔지? 그렇게 시작돼 버린 의심의 꼬투리를 어떻게 풀까? 갑자기 어지럽던 머리가 말짱해지며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걱정거리를 덥석 안겨준 친구에게 전화를 건 게 화근이었지만 전화를 걸게 된 내 초라한 신세는 그럴 만 했다.
주변엔 더위 먹었다 했지만 달팽이관에 ‘이석’ 이란 놈이 떨어져 나와 둥둥 떠다니면서 균형감을 잃어버린다는 이석증이 간만에 찾아 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을 근무하다 주말이 되자 넉 다운이 돼버렸다. 그러나 남편의 돌봄이나 방학으로 한가한 대학생 딸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숫제 토요일은 어지러워 거실 바닥에서 시체처럼 종일 자는데 한 끼도 못 챙겨 먹고 자고 또 자며 널브러져 있어도 단지 '밥 해라고 건드리지만 않아도 감사해할 일이지' 라는 식의 무심한 방치만 있었다. 아니, 그 날 아침도, 여느 날처럼 일 핑계로 사무실에 가려고 가방을 챙겨드는 남편을 어지러워서 고개를 외로 15도 정도 비켜들고는 ‘오늘은 내가 애들 밥을 못 챙기니 대신 좀 해 달라.’고 당부하여 겨우 붙잡아 둔 것이다. 그랬더니 아픈 나도 가끔은 일어나 화장실은 다녀오는데 이 사람은 화장실 한 번 안가고 종일 잠만 자는 게 환자보다 더 푹 자는 것이다.
게다가 다음 날인 일요일은 더 가관이었다. 아침 8시에 눈을 뜨니 침대가 비어 있었다. 또 사무실로 달아났나 싶어 얼른 전화를 하니 다니는 운동센터에 샤워하러 왔다고. 안도의 숨을 쉬며 ‘아직도 내가 어지러우니 오늘 아침끼니를 좀 부탁 한다.’했더니 ‘알았다.’고 순순히 답해 주었다. 그랬던 남편이 아침시간이 훌쩍 지나 11시가 되어도 오질 않았다. '이게 뭔 일인가? 사무실로 가버렸나?'싶어 전화를 했더니 ‘이제 샤워 끝나고 옷 입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자 뒷골이 당겼다. 알았다고 그럼 와서 애들 데리고 나가 아침 겸 점심이나 사 주라고 했다. 그런데 차로 5분 거리인데 옷 입는다던 양반이 한 시간이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픈 사람 열 받아 다시 전화를 하니, ‘이제 커피 한 잔 하고 집으로 간다.’고 태연히 대답하는 게 아닌가? 기가 차서 남편 얼굴을 보게 되면 애들 앞에서 싸우게 될 거 같아 -싸울 힘도 없었지만- 옷을 챙겨 입고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비켰다. 그 서러움을 꼬박 이틀 겪고 월요일에 출근하니 증세도 증세거니와 주말에 먹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더 받아 얼굴이 파리했다.
정갈한 교실, 내 책상 앞에 털썩 앉고 보니 그제야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난데없이 초등 동기가 절절이 생각났다. 남자 같지 않게 대하는 유일한 친구로 일 년에 한 두 번씩 스트레스를 받아 완전히 넋이 나갈 경우 전화를 하는 8촌 가까운 외가친척이자 어릴 적 짝꿍이다. 그 친구는 남편과 같은 고교 동창이기도 하여 우리남편을 잘 알고 있었다. 고 3때 같은 반이었는데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는 수업도 빼먹고 잔디밭에 드러누워 자고 있다가 선생님한테 귀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들어오던 4차원이었다고, 엉뚱하고 산만한 행동으로 주변 친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던 녀석이라며 “너, 잘못 걸렸다.”며 내 가슴에 '콕' 못질을 한 친구였다. 그래도 내 자존심에 대놓고 하소연은 못하고 “야, 내가 갱년기라 심신이 고달픈데 남편도 자식도 섭섭하게 하더라.”며 아리송하게 엄살을 피우다가 종내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다.”며 운을 떼니 “야, 해 봐라! 친구한테 못할 말이 뭐 있노?”하는 꾐에 그만 속사정을 쏟아버렸다.
“그래, 뭐! 야, ◯◯이 그래도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잠자리를 하려면 나한테 한 2주씩은 공을 들였거든! 야, 생각해봐. 한 달의 절반을 옆에 와서 살살거리고 말도 잘 들으니 아무리 4차원이라도 살만 하잖어?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아예 생각이 없나 봐. 안 와! 살살거리지도 않고. 그러니 내가 이 남자를 다스릴 방도가 없어졌잖아?”
그 내막은 이러했다. 봄이라고 달력이 앞장서서 사기 치는 으슬으슬한 3월의 추운 밤, 평소 ‘일’ 말고는 거의 무뇌에 가까운 남편이 부쩍 곰살맞게 굴며 잘 보이려고 엄청 서성대었다. 그러던 몇 날 며칠 끝에 안하던 화장실 배수구 청소까지 해내고서야 잡힐 듯 말 듯하던 마누라를 간신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런 한밤의 작업 도중 그간의 노력이 무심하게 갑자기 그 물건이 쉬이 죽어버리는 난감한 사태가 일어났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하여 주섬주섬 잠옷을 껴입으면서 “그럴 때도 됐지 뭐."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당황함을 감추던 남편은 그 이후로 더 이상 잠자리를 하려 하지 않았다. 나도 뭐 바쁘고 지쳐 그런 것엔 신경 쓸 겨를이 눈곱만치도 없이 무더운 한여름을 맞은 것이다.
아무튼, 잠자리에 관한 남편의 행동양상을 이용하여 고무줄 늘이듯 그 기간을 늘여 4차원 남편을 조종하며 20년 이상을 살아온 터였다. 그런데 이젠 그 전략마저 쓸 수가 없다면 발에 땀난다며 한겨울에도 버젓이 양복에 샌달을 신고 다니는 독특한 남편을 조종할 방도도 없거니와 이건 숫제 바람일 수도 있다니! 지난밤의 예고 없던 술자리나, 올봄부터 부쩍 많아진 주말의 사무실 출근이 의심의 연기를 모락모락 지피고 있었다. 싱숭생숭한 심사로 수업을 하다 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톡톡톡’ 전화를 걸었다. 살아온 경험으로 보아 고민할 거 없이 깨끗하게 물어 보는 것이 제일 간단한 수였다.
"여보, 당신 왜 3월에 하고 지금껏 안 해? 혹 바람났어? 인터넷 조회 하니 바람 났거나 ○기능장애거나 둘 중 하나래!“
"바쁜데 니 뭐라 하노? 여기 직원들한테 다 들린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목소리 톤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 빨리 말해! 바람 난 거 아니면 기능장애니까 빨리 약이라도 지어 줘야 한대. 인터넷에서 그러더라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냥 뻥을 쳤다. 자기 고등학교 친구에게 물어서 안 거라면 기절초풍할 테니까.
"그런 거 인터넷 치지 말고, 애들 외삼촌한테나 물어봐."
그리고는 ‘딸깍’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별로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다 곧 전화가 울렸다.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는 건 내가 미끼를 잘 던졌다는 거다. 축 처져 있던 내 입꼬리가 위로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건 말이야, 당신이 잔소리를 안 하면 되는 거야."
"아니, 당신 같은 사람은 하도 기를 채워서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떡해? 이 나이에 잔소리하기 싫은 사람이 누군데? 어쨌든 좋아. 그럼, 이틀 잔소리 안하면 되지?"
"아니, 보름!"
"보름? 좋아. 보름동안 안 할게."
"아, 또 있어!"
"뭐?"
"원래 호랑이는 아무 것도 안하고 딱 잠자리만 해. 그러니까 설거지, 빨래도 안해야 돼."
"헐? 당신이 호랑이야?"
호랑이같이 잘 생겼기나 했어? 힘이나 셌냐? 속으로 콧방귀 꼈지만 ‘알았다' 고 답하고 저녁 몇 시에 들어오는지 시간상으로 정확히 물었다. 더 이상 지난 일요일처럼 당하지 말자는 용의주도한 계산이었다. “10시는 넘어야 돼. 오늘 직원들 데리고 저녁 먹으면서 중대 발표를 해야 하거든.” “그래? 그래도 밥만 딱 먹고 9시까지 와요. 당신 아들, 여름에 개운하게 온천탕에 좀 데려가게.” “알았어요.” 내가 그의 청을 들어주니 이제 그가 나의 부탁에 존대를 하며 순순히 들어주었다. 간만에 서로의 요구조건을 주고받는 핑퐁식 소통이 이뤄진 셈이다.
바람은 아니란 말이지? ㅎㅎ 머리에 달라붙은 거머리를 툭툭 떨어내며 실실 웃음이 났다. 그래, 농담처럼 사는 거지 뭐…. 초등 동기의 서글서글한 대답은 나를 청승에서 가뿐하게 농담으로 올려놓았고 그 농담은 남편에게 가서 가벼운 풍선이 되었다. 서럽던 마음은 호랑이처럼 마누라를 생으로 먹겠다는 남편의 능청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면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소풍 때건 운동회 때건 어디서 구했는지 깡통 하나 차고 와선 실실거리며 각설이 타령을 하던 어릴 적 남자 짝꿍. 평생 실실 농담하며 나를 무장해제 시켰던 그 친구의 실전 아닌 실전 같은 조언으로 남편에게 건넨 덜떨어진 농담이 부부 사이에 솔바람을 불어 넣은 셈이다. 가볍게 농담처럼 흩어지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나도 친구처럼 설렁설렁 농담이나 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