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 괜찮아

by 허미희

어떻게 남편의 지원을 받는단 말인가? 식탁에서 《한국산문》잡지의 한 대목을 읽다 잽싸게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별난 일이야.’

수필공모 당선 소감에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 이란 글자를 보고는 평소 무겁기만 한 내 엉덩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자고? 뭘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은 거야? 모르겠다. 남들에게 그런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운 것도, 질투 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나와는 다른 남편을 가진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도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이었다. 나이 오십 줄에 들며 변색한 치아가 보기 싫어 온라인 몰에서 미백치약을 주문하였다. 그리고는 집 가까이에 있는 CD기로 돈을 입금하려고 지갑에서 은행카드를 꺼내 들었다. 소파에 누워 폰을 뒤적거리는 남편을 슬그머니 뒤로 한 채 엊그제 우편으로 받은 《한국산문 7월호》를 손에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산문잡지를 읽으며 CD기를 향해 아파트 가로수 길을 더듬더듬 걸어갔다. 현금지급기에 도착하여 유리문을 밀고 단말기 앞에 섰다. 순간 카드가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어? 카드를 안가지고 왔나?’ 하고는 돌아서 나왔다. 다시 더듬더듬 책을 읽으며 집으로 가다가, ‘아니지? 주머니에 넣었지….’ 하고는 바지 뒷주머니를 뒤졌더니 카드가 나왔다. ‘그럼 그렇지!’ 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입금을 끝내고 싱긋이 웃음이 났다. 잡지를 읽느라 정신이 빠져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새삼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총기 잃은 멍청한 아줌마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또다시 산문집에 눈을 박고 더듬더듬 집으로 가는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누가 불렀다.

“선생님!”

자전거를 타고 있는, 긴 머리에 차분하고 가녀린 인상의 소녀가 반가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낯익지도 설지도 않은 얼굴이라 수업을 들어가는 5학년 여학생인 줄 짐작했고 스쳐지나가도 아무 문제없을 상황에서 나를 불러 세울 만큼 친근하게 대해주는 게 고마워 나 역시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응? 어디 가니?”

“김밥 사러요….”

“아, 점심?”

한낮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이라 점심이겠거니 물었다.

“아뇨, 아침이요….”

“아침 아직 안 먹었니?”

“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녀는 내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바퀴를 젓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싸워서요….”

초점 없는 시선을 멀리 보내며 대답하는 어린 여학생이 쓸쓸해 보였다.

“으응…? 너…, 속상하겠구나.”

“네….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순간 ‘철 든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수업에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이름도 모르는 아이였는데 곱고 긴 머리카락이 선이 가는 얼굴을 더 차분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복잡한 사정이 있어. 너는 너야. 부모님과 별개라고 생각하고 너 할 일에만 집중하면 돼. 시험공부 하고 있지?”

“네!”

“그래, 지금은 부모님 어떠셔?”

“서로 다른 방에 떨어져 있어요.”

“그럼, 됐네! 선생님 어릴 때, 우리 부모님도 싸워서 밥상이 날라 가고 그랬어. 김치가 천장 에 올라붙고 그랬는걸! 근데 나는 구석에서 계속 숙제만 하고 있었어. 어른이 되고나니 알겠더라. 왜 그렇게 싸웠는지. 너도 크면 이해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나도 젊어서는 많이 싸웠어. 나이가 드니 서로를 알게 되어서 점점 안 싸우게 되었지.”

“정말요?”

아이의 순한 눈빛이 갑자기 밝아지는 듯했다.

“그럼! 아직 부모님이 젊으셔서 그래…. 엄마 아빠 젊으시지?”

“네, 엄마는 30대, 아빠는 40대예요.”

“그래, 젊으시네! 나는 50인걸. 나처럼 나이 들면 안 싸우시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편안해 지는 것 같았다.

어느 덧 아파트 상가에 이르렀고 그 바로 옆 동이 우리 집이라 헤어지게 되었다. 차분한 머리칼이 어깨 아래까지 얌전하게 드리워진 그 여학생은 자전거를 끌며 머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어깨에 떨구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잘 가!” 답해 주었다. 김밥집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둘째 녀석이 부탁한 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아이들 이름을 크게 부르며 아파트 현관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그런 나의 시끌벅적한 침입에도 남편은 미동도 않고 여전히 폰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둘째 아이도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모양이고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대학생 큰딸은 해가 중천인데도 침대를 끌어안고 버둥거리는 중이었다. 손사래로 사양하는 남편을 두고 차례차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어주고는 이제 식탁에 앉아 본격적으로 산문잡지를 읽어나갔다. 그러다 이번 호 당선작 수상소감에서 남편 운운하는 대목을 읽고는 요상해진 내 심사를 정리하기 위하여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다.


남편은 내가 문창과 공부할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동아리 사이트에서 글을 읽거나 계간지를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인생은 어둡기 마련이고 그런 인생을 쓴 글들은 정신 사나울 텐데 뭐 하러 읽느냐.’ 고 하였다. 그러다 올 해는 내가 글을 쓰겠다며 직접 모임에 나가니 미리 말뚝부터 박았다. ‘우리 식구 얘기는 절대 쓰지 마라! 나는 그런 거 딱 싫다!’ 라며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생활이 공개되는 건 아주 나쁜 일’이라고 하였다. 남편의 말에 웃으면서, 자기 체험이 녹아들지 않을 수 없는 건 사실이나 어느 작가도 남편이나 자식 얘기를 소재 삼지는 않는다고 답해주었다. 시댁 쪽도 마찬가지라고, 주로 성장하면서 겪은 친정 쪽 얘기를 깊숙이 다룬다고 안심을 시켰다. 근데 내가 뭐 소설 정도나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나도 내 식구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더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니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그러던 그가 엊그제는 합평 모임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나를 보고는 “데려다 줄까?” 하고 넌지시 말을 붙여 왔다. 평소 어딜 가든 에스코트해 주던 남편의 태도를 확인하니 ‘그럼 그렇지’하고 그간의 서글펐던 내 마음도 한풀 누그러졌다.

나는 안다. 젊은 날 지겹게 싸운 건 어떻게 주변 상황이 척박하여 살아가느라 힘들어서 그랬다는 걸. 서로의 모난 성격을 가지치기하는 과정이었다는 걸.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몰랐으며 스스로 서기에 부족한 연륜이었다는 걸.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마누라가 옳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이었다. 물론 나의 우유부단함이나 소심함이 남편이란 징검다리를 디디면서 편안해진 적도 많았다. 남편이 나의 글쓰기를 못마땅해 하는 것은 직장과 가사에만 전념해온 아내를 다른 곳에 뺏기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고, 나아가 인생사 어두운 면면을 굳이 타인의 글로 만날 일이 뭐있나 하는 문학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게다가 식구들 이야기가 컴퓨터에 떠돌거나 하여 쓸데없는 일을 불러들이지는 않을까 하는 극도의 조심성도 한 몫 했다. 어쨌든 내가 남편의 성격과 생각을 이만큼이나 헤아려 나의 글쓰기에 부정적인 촉각을 세우는 그를 차분히 안심시키는 것도 이 나이가 되니 가능한 일이다.

그 어린 여학생에게 최나미 작가의 『걱정쟁이 열세 살』이란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어야겠다. 불안정한 가정환경에 놓여있던 주인공과 그 가족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감정을 조절해 나가는 아동소설이다. 아동소설치고 심리나 인물들 간의 미묘한 관계묘사가 어른 소설만큼 깊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발견한 신간으로 자신의 안목에 자부심을 느껴 지금껏 소장하고 있는 책이다. 그 딸이 여태 침대에 뒹굴며 긴 팔다리를 있는 대로 늘이곤, “아, 인생은 너무 행복해.”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깥 거실에까지 들려왔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게으름을 즐기고, 엄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6학년 남동생은 공부에 몰입하고 있으니, 토요일 한낮의 편안함을 그렇게 느꼈나 보다.

그렇다. 사람마다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고 처한 환경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라는 건 없다. 자기 식대로 살고 자기 식대로 인정하며 속 끓이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거, 그게 요즘 나의 행복이다. (20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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