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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MAY Nov 10. 2017

'행복하지 않을 자유'에 대하여

세계일주 D+23|태국 방콕



사실 처음부터 내게 방콕이 마냥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

차라리 완벽하게 혼자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군중 속 고독.

그러면서도 아직 딱히 어울리고 싶지는 않은 마음.


사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여행지에 빨리 오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조용히 내 마음을 보듬어주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방콕은 몹시도 더웠다.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날씨.

카오산의 (아마도) 가장 저렴한 숙소에 머문 탓에, 8인실 방 안에 창문조차 없었으며

한낮부터 초저녁까지는 에어컨도 가동하지 않았다.

그 시간대에는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데,

-나갔다가도 1시간 내로 땀범벅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숙소조차도 이렇게 끔찍하다니!


잠깐만 매트릭스에 등을 대고 누워있어도 맞닿은 면이 땀범벅이 됐기에,

나는 마치 오징어를 굽듯, 엎어졌다 뒤집어졌다를 반복했다.

의욕은 제로.

그렇게 방 안에 추욱 늘어져있노라면 내가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행복하고 싶어서 떠나왔다 하고는, 행복은커녕 더위에 지쳐 이렇게 퍼져있는 꼴이란…

우울함이 차올랐다.


그때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방콕은 어때? 재밌어?'

평소와 다름없이 답장을 친다.

'응 여기 괜찮아. 재밌어!'


보내기를 누르려는 순간, 멈칫.


젠장! 괜찮긴 뭐가 괜찮단 말인가.

하나도 안 괜찮고, 하나도 안 재밌어!

사람들도 너무 우글거리고, 더워 죽을 것만 같아!


왜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마지막 회사 생활의 2개월을 그렇게 괜찮은 척 보냈듯,

나는 왜 '괜찮다'는 가면으로 진짜 마음을 감추어버리는 걸까.


물론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다 보면 정말 매사에 감사한 사람이 되듯,

행복도 습관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 굳게 믿지만,

그래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잖아.


그때 느꼈다.

'행복하지 않을 자유'

나는 왜 그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가.

내 자유를 앗아간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여행이라고 무조건 행복한 나날만 가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그쯤 미치니, 마음이 몹시 편안해졌다.

굳이 혼자 조용히 있지 않아도, 충분히 내 마음을 보듬을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무거운 족쇄 하나가 탁- 풀린 듯.

'행복하지 않을 자유'

굉장한 자유를 손에 얻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진 기분.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고,

공기는 제법 선선해졌다.

카오산 거리가 눈을 뜨기 시작하는 시간.

잔뜩 흥에 취한 무리가 내 앞을 스쳐간다.

순간, 그들의 흥이 내게 전염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다!

나는 그대로 편의점에 가 병맥주를 하나 산 후,

빨대를 콕 꽂았다.

그리고는 한 입 쭈욱 들이마셨다.

캬-


그렇게 한 손에는 빨대가 꽂힌 병맥주를 든 채,

그 인파 속으로

천천히, 하지만 누가 봐도 신나는 발걸음으로

파고들어갔다.




나는 다음날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기 진짜 더워. 재미는 개뿔, 낮엔 정말 죽을 것 같아.

 아! 근데 카오산의 밤은... 좀 괜찮은 것 같아!'


실제로 그날부터 나는 카오산의 밤에 푸욱 빠져버렸다.




‘괜찮아’라는 포장지로 구태여 감추지 말아요.

다른 사람에게도,

당신 스스로에게도.

오늘이 행복하지 않았더라도, 실패한 삶이라 자책하지 말아요.

오늘의 하루가 내일의 행복을 더 빛나게 해줄 거예요.

그러니 부디 오늘의 당신에게 '행복하지 않을 자유'를 주세요.


당신,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 YOUTUBE <여행자may> : https://www.youtube.com/여행자m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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