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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MAY Nov 09. 2017

푸카오텅, 그날의 연주를 기억해.

세계일주 D+24|태국 방콕



남산타워에서 보는 야경보다는, 낙산공원의 작은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좋아한다. 같은 서울의 야경임에도 왠지 과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의 그곳이 좋다. 마냥 아름답기보다는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사람 내음이 난달까…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에서 그러했고, 로마의 이름 모를 오렌지 농장에서 그러했다. 가장 예쁘다는 야경 명소보다는 항상 눈이 편안한 의외의 곳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때로는 이름도 불확실한, 누군가의 선물인지도 모르는 그 장소는, 보통 그 나라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가 되곤 했다. 이처럼 기대하지 않고 무심코 찾은 곳이 내게 최고의 선물이 되어 펼쳐지는 순간의 짜릿함에 빠져, 여행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바로 오늘, 방콕 푸카오텅에서 나는 같은 기분을 느꼈다.



푸카오텅은 높은 곳에 위치한 사원이다. 그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종이 있다. 수 백 개의 종이 가벼운 바람에도 두근거리는 음악을 자아낸다. 어느 울림 하나 억지스러운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이곳의 연주는 내게 완벽했다. 그 음악을 듣고 사원에 오르면 방콕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사실 그곳에서 방콕 시내가 완벽하게 내려다보이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반짝이지도 않았지만, 은은하게 빛나던 그 모습이면 나는 충분했다. 반짝이는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것도, 경관을 위해 인위적으로 주변 나무를 완벽히 베어낸 것도 아니라 야경을 즐기기에 완벽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딱 눈이 편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를 스쳐가는 스님들에게, 그리고 옷자락에 묻어 있는 향냄새를 향해 나는 미소 지었다. 과하지 않게, 이곳의 야경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항상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며 산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가장 어려운 숙제와도 같다.


예를 들면, 나는 낯가림이 몹시 심한 타입이다. 겉으로는 밝아 보이고, 실제로 모르는 사람과 말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그건 딱 초반의 15분뿐. 인사를 마치고 이제는 조금 더 '친해질 단계'가 다가오면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 발을 빼버리곤 한다. 그게 나의 낯가림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생활을 할 때면 '낯가리지 않는 밝은 성격인 척, 누구와도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마냥 유쾌한 사람인 척'을 연기하곤 했다. 그렇게 사회에서 만난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진이 다 빠져 뻗어버리곤 했다. 낯을 가리면 가리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합리화하며, 부자연스러운 삶에 익숙해져 갔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나의 낯가림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대화보다는 편안한 침묵을 택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자, 억지로 다가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게 여행을 하며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실제로 '정말 친해졌다', '정이 들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다. 그러다 보니 스쳐가 버린 아쉬운 인연들도 많았다. 하지만 '가까워졌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소수의 이들은 정말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가까워진 사람들이기에,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다른 예로, 나는 연애를 할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고, 그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꼽는다. 그리고 상대 역시 '내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사람'이기를 바란다. 조금 더 멋져 보이려고, 있어 보이려고, 혹은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 자신을 억지스럽게 포장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 역시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항상 잘 되지만은 않지만- 


반짝이는 겉포장을 두르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만의 빛을 가지고 있다. 나는 서로의 진짜 빛을 알아보고, 그것을 사랑하는 연애를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러운 푸카오텅의 연주가, 야경이, 향기가 좋았다.


‘방콕에 오면 꼭 가야 한다는 그곳들’의 일정은 모두 빼더라도,

방콕에 있는 남은 시간 동안 매일같이 이곳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딸랑딸랑.

바람이 만들어준 종의 연주.

이 소리는 내 기억 속 방콕의 전부로 남겠구나-


여행이라는 건,

이처럼 찰나의 색으로 빈 종이를 채워나가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종이는,

자연스러운 색이 한가득 모여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면 좋겠다.




자연스러운 삶.

이것은 여전히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 같아요.

여행을 다녀온다고 사람이 그렇게 크게 변하지는 않거든요.

다만,

여행이 제게 준 선물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어요.


당신은 어때요?







- YOUTUBE <여행자may> : https://www.youtube.com/여행자m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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