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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l 22. 2022

사람을 찾습니다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내가 한 말은 이랬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 기억해 기억해 내란 말이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준 모든 상처를.’


그 말을 내뱉고 난 혼자가 되었다. 스스로 선택한 결핍이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이도 없었다. 어쩌다 태어났고 살았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혼자인 게 익숙해졌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외로움 앞에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벗어나려 무던히 애썼다. 고립은 현재진행 중이다.



아무도 원치 않던 내가 누군가를 원하게 되었다. 딱 한 사람. 나는 지금 한 사람을 찾고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이 나의 하루를 궁금해했으면 좋겠어요.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봐 주었으면 해요. 간단한 날씨 이야기도 좋을 것 같네요. 날씨 이야기만큼 쉬운 대화거리도 없으니까요. 하루의 끝에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다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나도 당신의 밤이 안녕하기를 바랄게요.

메시지도 좋지만, 가끔 통화를 하는 건 어떨까요?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도 호흡이 전달되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내가 숨 쉬는 동안 당신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테니까요. 날이 좋으면 우리 같이 산책해요. 난 걷는 걸 무척 좋아해요.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다시 걷고 이야기 나눈다면 행복할 것 같네요.


사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현재의 나를 그대로 봐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결핍으로 생긴 내 마음의 병을 애써 위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겠지만 조금 참아주길 바랄게요.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는 게 좀 힘들어요. 그것들은 나조차도 버거운 이야기라서요. 솔직히 말하자면 속마음을 말하는 편이 아니에요. 이 부분은 이해해 주길 바랄게요. 하지만 듣는 건 꽤 소질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는 잘 들어 드릴게요. 서로를 천천히 이해하고 일상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시간을 나에게 조금 내어주실래요?


사람 하나 찾으면서 너무 많은 조건이 붙어서 미안해요. 그래도 난 사람이 필요해요. 남자든 여자든.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어요. 나는 정말 사람이 필요해요. 그것도 딱 한 사람. 아주 간절히 그런 사람을 찾고 있어요. 나를 구원해 달라는 말은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당신에게 내 곁을 조금 내어주고 싶어요. 난 알아요.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척도 하지 않아요.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고 그저 지켜봐 줬으면 해요. 난 내가 정말 애틋하거든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여기 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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