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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May 01. 2016

캄보디안 슬리핑 버스

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11 - 캄보디아 프놈펜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여자는 열흘 만에 캄폿을 떠났다. 내일은 가야지, 내일은 가야지, 하고도 선뜻 떠나지 못하고 열흘 만에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점심 무렵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해놓고, 오토바이를 반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돈 후 올드브리지 너머에 있는 러스티키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러스티키홀은 네팔 여행에서 만난 존이 추천해준 식당이었다. 존은 여자가 캄폿에 가기 몇 달 전 캄폿을 먼저 다녀갔고, 여자는 올리스플레이스에서 밥을 먹지 않을 때는 꼭 러스티키홀에 가서 밥을 먹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여자는 쥘과 셉, PK와 마지막 인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누고 첫날 빗속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던 그 길을 다시 나왔다. 겨우 열흘이었지만 고향을 떠나는 것 같았다. 고향을 떠나는 것보다 더 아쉬운 마음이었다. 고향엔 다시 가지만 그곳엔 언제 다시 가보게 될지 몰랐다. 쥘이나 셉도 처음 올리스플레이스를 만들어놓고 이젠 떠나고 없는 올리처럼 결국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에 도착했던 첫날 시하눅빌에 가기 위에 거쳐가는 곳으로 들렀던 것처럼, 이번에는 바탐방으로 가기 위해 들렀다. 슬리핑 버스라는 걸 한 번 타보고 싶어서 프놈펜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바탐방행 버스를 타는 대신 강변과 야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슬리핑 버스를 기다렸다.


두 번째 방문인 데다 한국에서 타던 중고 천연가스버스와 싸이 강남스타일 티셔츠와 씨스타의 음악이 흘러나와 별로 이질감을 느낄 수 없는 오후 나절이었다.



프놈펜에는 나이 지긋한 관광객이 많았다. 아무래도 비행기로 오갈 수 있는 수도라서 그런 것 같았다. 중앙선이 무색하게 오로지 경적만으로 서로 시작하는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멍하게 지켜볼 뿐 대화가 통 없는 노부부들도 적지 않았다. 인생의 양상은 어디 사람들이나, 어디에서나 비슷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군가와는 잠깐을 함께 있어도 친밀감이 들고, 누군가와는 끊임없이 할 말이 생겨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몇 번을 봐도 서먹하고, 아무리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려고 해도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진다. 어색한 침묵을 감추려 억지로 웃으며 머릿속으로는 거의 갓난아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추억과 소재를 뒤적여 봐도 소용이 없는 자리, 그런 사람도 있다.


어떤 노인들은 그럴 바엔 혼자 여행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들에겐 어색한 침묵이나마 함께 나눌 배우자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있다 해도 혼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프놈펜에는 시하눅빌과 마찬가지로 젊은 캄보디아 여자를 무릎 위에 앉힌 백인 중장년 남자가 많았다.



'메콩 리버'라는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행 기록을 남기며 버스 시간을 기다린 여자는 밤이 돼도 여전히 총천연색으로 화려한 길을 다시 돌아 터미널로 갔다.


슬리핑 버스라고 해서 밤늦게 출발해 새벽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버스는 대게 저녁 8~9시에 프놈펜을 떠났다. 게다가 프놈펜에서 바탐방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몇 군데 버스 회사를 다니며 최대한 시간이 늦은 버스표를 샀지만 여자는 결국 새벽 3시 반에 바탐방에 도착했다.


슬리핑 버스가 여자에게 안긴 당혹스러움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발권받은 표에는 분명히 좌석(침대) 번호가 찍혀 있었지만 버스 기사는 여자가 가까운 곳에서 먼저 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임의로 앞쪽 침대를 배정했다. 처음엔 여자도 이의가 없었다. 잠들었다 부랴부랴 내리려면 아무래도 앞쪽이 편할 터였다. 하지만 배정받은 침대로 갔을 때 여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통 키의 여자가 누워도 다리를 뻗지 못할 길이, 보통 체격의 사람 둘이 눕기에도 좁아 보이는 폭의 침대 위에는 이미 남자가 누워 있었다. 목은 꺾이고 다리는 세운 채.


사람들이 한창 타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는 우선 통로에서 비켜주기 위해 침대에 가방을 올리고 자신도 올라가 웅크리고 앉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아무리 쿨해지려고 애써봐도, 현지인들은 그렇게도 가는 모양이니까 별나게 굴지 말자 생각해봐도, 거기 누울 수는 없었다. 누워서 갈 수도 없고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건 슬리핑 버스가 아니었다.

 


여자는 운전기사에게 원래의 자리에 가게 해주든가,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기사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여자가 하는 말은 분명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별다른 대꾸를 않은 채 다른 손님들을 태웠다. 여자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웬만큼 사람들이 탄 걸 확인하고 나서 이번에는 버스 안에서 좌석을 안내하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다시 항의했다. 그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잠시 후 다시 와서 제일 뒤쪽 2층으로 여자를 안내했다. 거기에도 이미 누군가 누워있었지만 여자였다.


발 쪽에 가방을 두고 자리에 있던 얇은 담요를 덮고 누웠다. 옆에 누운 승객은 쏘말리라는 이름을 가진 캄보디아 사람이었다. 쏘말리는 태국에서 일하게 돼서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까지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슬리핑 버스는 프놈펜에서 태국 국경으로 가는 슬리핑 버스고, 그 중간중간 여기저기에 서긴 하지만 그곳들은 본래의 목적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화나고 당황스러운 마음은 쏘말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안정을 찾아갔다. 비록 돌아누울 수도 없고 다리를 뻗을 수도 없는 좁은 침대였지만, 너무 심하게 덜컹거려서 허리가 아팠지만, 버스가 출발해서 바탐방에 도착하기까지 네댓 시간 동안 잠도 잤다.



새벽 3시 반에 자다 깨서 낯선 도시의 어두운 거리에 남겨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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