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주동안(逳住東顔) 동남아 여행 번외 편 #14 - 캄보디아/라오스 국경
스물다섯에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해서
서른다섯에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둔 여자는
퇴사 18일째 되던 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그 여자가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두루 다니고(逳)
잠시나마 살면서(住)
동(東)남아의
낯(顔)을 마주하러 떠난
육주동안(逳住東顔)의 여행 이야기,
다음스토리펀딩 연재의 '번외 편'이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둘러본 다음날 아침 여자는 바로 씨엠립을 떠났다. 캄보디아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계기였던 씨엠립이 여자에게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도시가 됐다. 지금까지,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여자는 도시를 그런 식으로 여행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가보는 곳에 누구나 다 가보는 방식으로 다녀온 후 바로 다음 도시로 떠나는 식 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앙코르와트를 둘러보고 나니 더 이상 씨엠립에 머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여행이 이미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으므로 시간에 쫓기기도 했지만 씨엠립에는 관광객과 여행자들이 너무 많았다.
혼자 여행을 떠날 때 여자는 항상 자신도 모르게 두 가지 기대를 했다. 첫 번째는 혼자니까 마음대로 제멋대로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겠다는 기대이고, 두 번째는 식상하게도 혼자니까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그 누군가가 운명의 연인이어도 좋겠지만 사실 그건 꼭 연인의 형태가 아니어도 좋았다. 지금까지 여자는 여행에서 만난 누군가와 연애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꼭 만나기는 했으니까.
그런데 씨엠립은 그런 기대가 없는 도시였다. 거대한 유적지,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여자는 우선 피로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더운 날씨도 날씨지만, 셀 수 없는 세월과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에서 자신도 모르게 기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숙소 외에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를 딱히 찾지도 못했다.
빗속에서 앙코르와트 사원을 둘러보고, 한인식당으로 가서 무한리필 삼겹살에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다시 펍 스트리트를 목적 없이 쏘다니고, 마지막으로 마사지까지 받고 난 후 여자는 다음날 아침 라오스 4,000 아일랜드 중 하나인 돈뎃으로 가는 차편을 예약했다.
오전 7시 10분에 숙소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미니밴의 출발장소로 간다고 했다. 10분 정도 달렸던가, 며칠간 여자가 좁게 오가던 동네를 벗어나 다리를 건넌 오토바이가 한 게스트하우스 앞에 여자를 내려줬다. 오토바이 기사는 별 설명이 없었지만 여자처럼 큰 짐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듯한 여행자들로 여자는 거기서 기다리면 되겠거니 미루어 짐작했다.
그곳에서 5분쯤 기다렸을 때, 누군가 와서 여행자들에게 목적지를 물어보고 미니밴에 타라고 했다. 거기 있던 여행자들이 모두 여자처럼 라오스 돈뎃으로 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몇몇 여행자들이 자신의 행선지를 알려줬지만 여자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만 파악했을 뿐 처음 듣는 낯선 지명들을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다. 서로 가는 곳이 다른 만큼 차는 중간중간 서서 몇 명의 여행자들을 내려줬다.
7시 30분쯤 씨엠립을 떠난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시각이 11시 45분이었으니 거의 4시간 정도를 차로 이동했다. 남은 여행자들을 실은 봉고 기사가 여행자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아무 설명이 없었으므로 여행자들은 거기서 잠시 쉬는 건지, 점심때가 됐으니 점심을 먹는 건지, 다른 여행자들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자와 남은 여행자들은 서로 이게 어떻게 되는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 차에서 내려 차에 실었던 짐까지 다 내리고 나니 밴 기사는 버스를 바꾼다는 말만 하고 캔음료 하나를 원샷하더니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여자와 다른 여행자들은 일단 주섬주섬 짐을 챙겨 식당으로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을 싣고 온 미니밴이 잠시 서 있다 사라져버린 공간 안쪽으로 대형버스 한 대와 봉고차 두어 대가 서 있었는데, 버스 한 대 정도는 더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공터가 있는 걸로 미루어보아 그곳은 터미널인 것 같았다. 그 안쪽으로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여관 건물처럼 생긴 기역자의 단층 건물이 있었는데, 문마다 번호가 붙어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관이 맞는 것 같았다. 밴이 섰던 바로 왼쪽 편에 대여섯 개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쪽에서 음식과 음료를 팔고 있었고 이미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걸로 봐서 그곳은 국경 마을의 마지막 휴게소였던 모양이다.
여자는 이스라엘 남자 1명과 영국 여대생 2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여자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
"글쎄.. 근데 넌 어디 가?"
"난 씨판돈에 있는 돈뎃으로 가. 너희는?"
"우린 어디어디로 가."
"응? 어디?"
"어디어디."
여자는 처음 들어보는 그 지명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 듣는다. 잘 모르겠네."
"캄보디아의 또 다른 국경 도시야."
이스라엘 남자는 베트남으로 간다고 했다. 그때 왠지 그곳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지나갔고, 여자는 그 남자에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다. 베트남으로 가는 남자와 캄보디아의 또 다른 국경도시로 간다는 여자들이 타야 하는 버스와 라오스로 가는 여자가 타야 하는 버스는 달랐던 모양이다. 라오스로 가는 버스는 2시에 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있는 그곳은 스퉁트렝(Stung Treng)이라고 알려줬다.
여자와 무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2시에 온다는 버스가 2시에 올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고, 그 버스를 타고 다시 얼마를 더 가야 할 지도 몰랐다. 식당 매점에서는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간단한 음식이며 음료를 팔고 있었다. 미리 볶아둔 볶음밥과 컵라면, 커피와 과일 주스 정도가 선택할 수 있는 메뉴의 전부였다.
여자는 여자아이에게 2달러를 내고 1달러짜리 컵라면을 집었다. 여자아이는 받은 돈을 돈통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거스름돈을 잠시 기다렸지만 여자아이는 자신이 받은 게 2달러짜리인지 모르거나 거스름돈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자가 여자아이에게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과 몸짓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여자는 화가 났다. 하룻밤 숙박비가 겨우 5~6달러이고, 컵라면 1개가 1달러라는 걸 생각하면 1달러가 중요한 돈이기도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여행자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태연하게 모른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달러를 냈고 1달러짜리 컵라면을 샀는데 1달러를 돌려받지 못했다는 말을 최소한 다섯 번은 하고 나서야 여자는 좀 전의 그 남자를 통해 거스름돈을 돌려받았다. 여자는 기분이 나빠졌다.
컵라면을 다 먹고도 시간은 겨우 12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이때, 아까 그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넌 5달러를 더 내야 해."
"왜?"
여자가 물었다.
"씨판돈에서 돈뎃으로 가려면 다시 배를 타야 하는데, 네가 산 표에 뱃삯은 포함돼 있지 않거든."
"말도 안 돼. 난 분명히 돈뎃으로 가는 표를 샀어.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표로 배까지 탈 수 있다고 했어."
"아니야, 그건 버스표야. 5달러를 더 내지 않으면 배를 탈 수 없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져버렸다. 씨엠립 게스트하우스에서 표를 살 때 그곳 직원이 해준 얘기였다. 표를 잘못 사면 똑같은 돈을 내고도 뱃삯을 따로 내야 한다고, 그런데 자신들이 파는 표에는 배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이다. 여자는 빨리 그 남자를 다시 만나 자신은 돈을 더 낼 필요가 없다는 확답을 받고 싶었다. 버스가 오는 2시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았으므로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서 책을 볼 수 있었지만 남자가 다시 나타나기 전에는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여자는 다시 나타난 남자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남자는 "그럼, 알겠다."고 하고 휙 가버렸다. 나중에 보니 그 남자는 국경으로 가는 버스에 동승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 남자에게 5달러를 더 냈다한들 선착장에서 그걸 증명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무리 중에서 영국 여대생 둘과 이스라엘 남자 하나는 여자보다 먼저 그곳을 떠났다. 여자가 타야 할 버스는 2시가 돼도 오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남아 있던 벨기에 남자 한 명과 맥주를 마시고 있던 무리들 역시 돈뎃으로 갈 거라고 했으므로 여자는 애써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2시 15분쯤 대형버스 한 대가 왔다.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여행자들 무리가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가는 데마다 돈을 내놓으래?!"
돌아보니 거기에는 아까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물론 그 여행자들 역시 그에게 눈먼 돈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라오스로 갈 여행자들을 실은 버스는 현대차였다. 좌석 위쪽 짐칸에는 한국어 좌석 번호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스퉁트렝에서 낡은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움푹 파인 비포장도로를 요리조리 피해 달리며 다시 캄보디아-라오스 국경까지 가는 데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국경 초소로 보이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여행자들은 다시 한 번 우르르 내렸다. 경찰복을 입은 배 나온 남자가 구멍가게 테이블에 여행자들을 모두 앉히더니 작성할 서류들을 나눠주고 잘 들으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국경을 넘으려면 비자가 있어야 하니 서류를 작성하라, 비자 값은 나라마다 다르다, 서류에 붙일 사진이 없는 사람은 추가비를 내야 한다, 비자 값 외에도 각자 10달러씩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8달러는 캄보디아 출국에 드는 돈이고, 2달러는 라오스 입국 도장을 받기 위해 필요한 돈이라고 했다.
여행자들은 술렁였다. 캐나다에서 온 남녀 커플, 호주에서 온 세 남자, 독일에서 온 두 남자, 스위스에서 온 두 여자, 씨엠립에서부터 여자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벨기에 남자, 그리고 여자. 출신 국가마다 내야 할 돈도 다르다 보니 일단 시키는 대로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면서도 이 돈을 내는 게 맞느냐는 이야기가 오갔다.
여자가 경찰관에게 물었다.
"한국인은 2주 이하 무비자인데 비자발급비용을 왜 내?"
"아, 한국인은 비자 필요 없어. 그 서류도 이리 줘. 작성 안 해도 돼. 대신 10달러만 내면 돼."
"비자 발급을 안 받는데 10달러는 왜 내?"
"내가 너희들 서류랑 여권을 모아서 한꺼번에 출입국 도장을 받아다 줄 거야. 대신 받아다 주는 대행 수수료 포함해서 캄보디아 도장이 8달러, 라오스 도장이 2달러. 그래서 10달러야."
"왜 10달러를 내야 하는지 난 모르겠어. 내가 직접 출입국 심사받으면 돈 안 내도 되는 거지?"
"뭐, 네가 그러겠다면 말리진 않아. 하지만 국경에서 10달러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난 책임 못 져. 상관없지?"
"응, 상관없어."
그러고 난 후 너는 독일 사람이니까 몇 달러, 너는 사진이 없으니까 2달러 추가하는 식으로 모든 여행자들에게 돈을 걷은 후 서류와 여권들을 모아 사라졌다. 부패한 경찰관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 걸렸다. 여행자들은 다시 그곳에서 맥주며 요깃거리를 사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스위스에서 온 셀리나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친구는 라오스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입국 시에는 비자발급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여자가 그런데 왜 달라는 대로 순순히 냈냐고 물었다. 셀리나의 친구는 정말 내고 싶지 않았지만 귀찮았고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여행자들도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순순히 달라는 대로 돈을 준 것 같았다.
경찰관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다음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여자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경찰관이 예고한 대로 괜히 10달러 아끼려다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다른 여행자들은 모두 출입국 수속이 끝났는데 여자 혼자 따로 수속하느라 시간을 끌어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국경을 걸어서 넘어보기 전에 여자가 상상했거나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국경 넘기였다. 여자는 1950대 이후에 태어난 한국 사람이니까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건 여자에게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통하지 않고서는 기차나 버스로,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없으니까 여자에게 국경이란 더더욱 넘기 힘든 명확한 경계였다.
하지만 캄보디아 여행 내내 과분할 정도의 친절을 받아온 여자는 그곳에서, 캄보디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동안 겪었어야 할 거의 모든 불친절을 소급 적용받는 기분이었다. 국경은 한 나라를 떠나기 전 그 나라에 치렀어야 할 모든 감정을 정리하는 곳이자, 새 나라로 진입하기 위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곳이었다.
한 시간 후 경찰관이 돌아와서 캄보디아 출국 도장과 라오스 입국 도장이 찍힌 여권을 여행자들에게 모두 돌려줬다. 여행자들은 다시 현대차에 올라탔고, 50미터도 채 가지 않은 곳에 모두 내렸다. 그곳에서 다른 여행자들은 모두 준비된 미니밴에 짐을 옮겨 실었고 여자 혼자 출국 심사와 입국 심사를 받았다.
캄보디아 국경을 떠나는 데는 2달러가 들었다. 'Border Safety'가 명목이었다. 라오스 국경으로 들어서는 데에도 2달러가 들었다. 이번에는 'Stamp' 값이라고 했다. 여자는 합법적이지 않은, 그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갈 게 분명한 그 돈을 내고 싶지 않았지만 여행자들의 짐이 밴에 거의 다 실린 후여서 실랑이를 포기했다.
"얼마 달래?"
차로 돌아가니 다른 여행자들이 물었다.
"2달러씩 4달러 냈어."
"아, 역시. 우리가 당했네."
"괜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우리도 너처럼 했어야 하는데. 네가 잘 한 거야."
따지고 보면 그렇게 해서 여자가 아낀 돈은 겨우 6달러였다. 돈 6달러에 괜히 유난을 떤 게 아닌가 스스로 조금 의기소침했던 여자를 다른 여행자들이 위로했다.
국경에서 다시 씨판돈의 선착장까지 한 시간 정도 더 차를 타고 갔던 것 같다. 여자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여행자들은 표를 보여주고 바로 배에 탔는데, 표 색깔이 달랐던 여자와 벨기에 남자만 배에 타지 못하게 했다.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여자는 하루 종일 하도 시달려서 더는 놀라지도 않았다. 여자와 벨기에 남자만 선착장에 남기고 배는 곧 떠날 것 같았다. 여자는 검표원을 붙잡고 표를 내밀었다.
"여기 보세요. 이 표에 분명히 'Don Det'이라고 쓰여 있어요. 'Si Phan Don'이 아니라 'Don Det'이라고 쓰여 있는 표인데 왜 돈뎃으로 가는 배를 못 탄다는 거죠?"
여자는 배가 출발하기 직전에 배에 탔다. 하지만 벨기에 남자는 결국 배에 타지 못했다. 남자의 표에는 'Si Phan Don'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반기며 짐을 받아주는 여행자들과 함께 낮은 슬로 보트에 앉아 선착장에 남겨진 벨기에 남자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멀어지는 남자의 모습은 붉었다. 4,000섬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