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들과 장면들
한 번 더 말해줄래?
그가 청했다.
응?
내가 되물었다.
한 번만 더 말해봐.
뭘?
방금 한 말.
방금 한 말? 음... 뭘?
아니.
아니의 '니'를 길게 끌며 그가 웃었다.
혹시 이거야?
그가 계속 하라는 듯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책 보다가 삼성역까지 갔었어.
오늘 아침에 책 보다가 삼성역까지 갔었구나.
왜 그러는데?
나는 왜 그러는데의 '데'를 길게 끌며 웃었다.
나를 따라하는 그의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워낙 진지한 표정이어서 곧 웃음을 거두고 그의 얼굴을 봤다. 그거 입술을 움직여서 내어놓을 설명을 기다리면서.
그 문장만 들어도 오늘 아침의 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오늘 아침에 네가 정신 없이 책을 보던 것도 내가 본 것 같고, 책을 보다가 내려야할 역을 몇 개나 지나친 후에야 내려야할 역을 몇 개나 지나쳤는지 깨닫고 놀랐을 그 표정도 내가 본 것 같고, 책을 덮어 가방에 넣고 다시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뒷모습도 내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날 이후, 그는 종종 내게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말하게 했다. 오늘 흰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는데 짬뽕 국물이 다 튀었어, 라든가, 페이스북에서 시규어로스 투어 영상을 봤는데, 라든가, 별 특별하지 않은 문장들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참 별난 사람이네 싶었지만, 나는 그가 한 번 더 말해줄래? 하면 한 번 더 말해줬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도 그처럼 이전의 나를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몇 번이고 한 번 더 말해줬다. 편의점에 감동란을 사러 갔는데, 편의점에 감동란을 사러 갔는데, 회사 동료의 생일이었는데, 회사 동료의 생일이었는데, 매니큐어 지우는 걸 깜빡했네, 매니큐어 지우는 걸 깜빡했네.
하지만 시덥잖은 문장들을 꼭 두 번씩 말하게 하는 그의 버릇이 나를 향한 애정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러니 기꺼이 두 번씩 말해주자고 먹었던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그에게 두 번씩 말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두 번씩 말하게 한 문장들과 달리, 내가 그에게 다시 말해 볼래? 하고 되물은 것들은 대개 내가 듣기 싫은 말들이었다.
그러면 그는 아니야, 됐어 하며 한 번 더 말하기를 거부했고, 나는 더 집요하게 한 번 더 말하라고 그를 못살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