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들
#1
이사 온 지 십일 개월째. 이사 온 이 집에서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지는 넉 달 반이 됐다. 석 달 반쯤 살았을 때 세면대의 수도꼭지 손잡이의 길쭉한 지렛대 부분이 떨어졌다. 나사가 풀렸는데 위가 막혀 있어 다시 조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나사가 조이고 있던 힘을, 손으로 꾸욱 누르는 힘으로 대신해 온도를 조절해왔는데 어느 날엔가는 안쪽의 어느 부분ㅡ이 부분의 이름은 도저히 모르겠다ㅡ이 부서졌다.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중립상태에서 부서졌다는 것이다. 물을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오다가 곧 적당히 따뜻해지기 때문에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중간에 둬도 물이 뜨겁다.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왔지만 지금의 온도는 조금 뜨겁다, 싶다.
손잡이 나사가 풀려버렸을 때 바로 조치를 취했다면 좀 덜 불편하고 좀 더 쉽게 사태를 해결했을 텐데 게을러서 이지경까지 왔다. 그리고 아마 나는 앗 뜨거 소리가 절로 나올 때까지 아마 저걸 고치려 들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겠지. 왜 그러는 걸까.
#2
십여 년쯤 전에 카드사의 판촉전화를 받아 가입한 십 년 만기 실손 보험이 만료됐다. 납입은 십 년으로 끝났지만 보장은 십이 년까지 받을 수 있어서 역시 새로운 보험 가입을 미루다가 최근 다시 알아보고 있다.
물론 게으른 성질은 어디 가지 않으므로 엄마에게 부탁해서 엄마의 오랜 보험설계사를 통해 알아보는 중이다. 불과 재작년 겨울에 수술을 받고 작년 초까지 입원을 한 전력이 있어서 이미 두어 군데에서는 가입을 거절당했고, 가입이 가능하다는 곳에다가는 그간의 진단서 따위를 떼서 넣어두고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와중에 엄마가 전화를 해서 물었다. 100세 보장과 80세 보장이 있는데 뭘로 할래 하고. 100세라니, 아니, 100세가 아니라도 80세라니. 아직은 마흔도 겪어보지 않은 내가 여든 살까지 병원서 쓴 돈을 보험사에 청구해 타 먹을지, 백 살까지 그러고 있을 건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너무 쓸데없이 느껴졌다. 어차피 보험은 그렇게 올지 안 올지 조차 모르는 미래를 팔아 장사를 하는 것이라지만.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엄마에게 그냥 팔십으로 하자고 했다. 엄마, 나 백 살까지는 안 살 것 같아. 그랬더니 엄마도 별소리 없이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3
꽤 오래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시작된 일이 엎드린 채 내가 알아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알았냐, 언제 알아차리나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하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얼굴이 아직은 반갑다. 그것이 곧 또 다른 공포와 고통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일주일 사이에, 물리적인 일주일보다는 훨씬 더 많은 시간, 적어도 24*7=168시간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나를 지나갔다. 시간이란 원래 모든 순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개념이 아니다. 아우스터리츠 이전에도 누가 그렇게 말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신의 기억은 아우스터리츠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순식간에 화요일 혹은 수요일로 바뀌어 있을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