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문예지 영향력이 hart의 전시 <Vanishing>에 참여합니다.
아래는 hart의 디렉터 허유가 <Vanishing>에 대해 직접 설명한 글과 영향력이 Vanishing에 <喪>이라는 제목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 및 방식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긴 글입니다.
hart : Vanishing x 영향력 : 喪
2016.09.06. - 10.15. (일/월요일 휴관)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0-6
<Vanishing> D-1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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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t의 두번째 전시 'Vanishing'의 시작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Vanishing'은 한 개인이 살면서 소유해온 거의 모든 물건들, 그러니까 칫솔이니 식기, 꼭 필요한 옷가지와 신발 두어 켤레처럼 필수 불가결한 것들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과의 작별을 희망하는, 그것들이 삶의 영역에서 사라지는 과정과 결과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맞이하고자 하는 결심의 그리고 시행의 자리입니다.
여기, 혹여 그 물건들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 또는 그 시간과 공간에 함께 계셔 주실 분들을 기다리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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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펼치지도 않는 책들을 장르별로 구분한 후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편백나무장에 책등 높이순으로 정렬하곤 했습니다. 그 모습은 그럭저럭 보기에 좋았으나 그 중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는 책은 단 한 권이었습니다.
음반들을 A to Z 순으로 정리해놓으면서 인생도 함께 가지런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실제로는 CD의 플라스틱 케이스 사이 사이에 먼지만 끼었을 뿐 음악은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들었습니다.
길바닥의 녹슨 철사, 바닷가 모래사장의 마모된 유리 조각, 술자리 탁자 위에 나뒹구는 예쁜 병뚜껑, 커피 얼룩이 남은 냅킨. 그것들도 분류, 보관해왔습니다.
옷은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요. 뛰어난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이어서, 어떤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재킷이어서, 살이 도로 빠지면 입을 것이 분명하므로, 이건 너무 좋은 거라서, 이건 너무 예쁘게 낡은 거라서... 옷장 안에 미어터지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옷들, 신발들, 액세서리들이 질식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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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shing'을 준비하면서, "아아.. 이건 도저히 안돼..."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하는 물건들을 보게 됩니다. 남들에게 쓰레기를 주거나 팔 순 없기에 200여개의 CD를 일일이 들으며 '튀는' 것들은 미리 버리는 중이기도 합니다. 음악 하는 친구가 예전에 만든 한 앨범이 실로 명반이었음을 그 과정에서 깨닫는 일도 생깁니다. 어떤 것은 몹시 귀하고, 어떤 것은 너무 하찮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하찮은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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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것 하찮은 것, 가감 없이 떠나보냅니다.
자신에게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들만을 골라서 내놓는다면 '벼룩시장'이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꽤 오랫동안 TV를 안보고 살아서(주요 뉴스는 인터넷이나 친구들을 통해 들으면서) 근래 '미니멀리스트'니 '단샤리'니 하는 것들이 일종의 붐 내지 이슈라는 것도 몰랐는데, hart에서 이런 전시를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귀뜸을 해주어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뭐, 비슷할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스트들을 위한 다용도 침상, 다용도 탁자, '미니멀리스트용' 온갖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정말로 '없이 사는 삶'과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혹자가 "아, 당신 미니멀리스트군요?" 라거나 "여기 벼룩시장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저 "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구는 이 전시를 기획한 제게 "못된 사람같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라지게 하고 싶습니다.
'그 후'를 살고 싶습니다.
계간문예지 “영향력”@kitchentablewriting과의 문답을 통해 <Vanishing>의 연계 전시 <喪>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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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계간문예지 “영향력”은?
A. “영향력”은 키친테이블라이팅(Kitchen Table Writing) 계간문예지입니다. 어원이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소설가 김연수가 자신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에서 ‘키친테이블노블’을 “식탁에 앉아 쓰는 소설”로 정의하고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 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 듯하다.”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앉은 곳은 식탁이 아닐 수 있고 쓴 것은 소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언제 어디서 어떤 글을 쓰든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키친테이블노블을 ‘키친테이블라이팅’으로 확장하고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이 일과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써내려간 글’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혼자서도 묵묵하고 꾸준하게 글을 쓰는 모든 분들이 등단여부와 관계 없이 자신의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만들고 싶어 “영향력”을 창간하게 됐습니다.
영향력은 2016년 2월에 첫 번째, 6월에 두 번째가 나왔고, 지금은 10월에 나올 세 번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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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hart의 전시 <Vanishing>에 연계하게 된 까닭은?
A. 처음 ‘Vanishing’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 일 자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소중한 물건까지도 모두 사라지게 하고 그 후를 살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전시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어 오히려 여러 가지 물건이 버려지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동시에 문장들 또한 함께 버려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문장들을 읽고 쓰고 말하고 들으며 삽니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문장들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중에는 스스로 원해서 추억하며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들도 있겠지만, 잊으려 애써봐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문장들도 있습니다.
문예지인 “영향력”은 앞으로도 많은 활자와 문장을 종이 위에 찍어 남기게 될 텐데... 그러니까 이번에는 한 번 버려보자, 물건들을 버리는 행위 뒤에 새로운 삶의 방식과 태도를 기대할 수 있다면, 문장들을 버리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의 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Vanishing>과 함께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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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상>인가?
A. 문장을 버리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이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문장이라는 게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일까?’ 영향력이 다다른 결론은, 사실 그건 ‘버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버리는 행위는 버린 이후 마음과 태도의 변화를 바라며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었던 것이죠.
사람이 죽은 후에 ‘상을 치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의식을 치르지만 그 사람이 마음 속에서도 떠날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날 한시에 상을 치러도 마음 속에서 그 사람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문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사라지게 하고 싶은 문장들을 모아 한꺼번에 떠나보내며 이를 애도하는 의식을 치른다는 점에서 이번 연계 퍼포먼스를 <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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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을 통해 바라는 것
A. <상>에서 문장을 버리는 방식으로는 두 가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써서 버리는 것과 지워서 버리는 것.
첫 번째 ‘써서 버리기’는 어떤 이유로든 버리고 싶은 문장들을 hart에서 준비한 낱장의 종이들에 쓰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동안 내가 어떤 문장들을 품고 살아왔으며 왜 버리고 싶어하는가를 통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시기를, 그렇게 써서 버린 후에는 본인에게서 비워진 문장 만큼 조금 더 편안해지시기를, 저희는 바랍니다.
두 번째 ‘지워서 버리기’는 이미 만들어진 첫 번째, 두 번째 “영향력” 두 권에 있는 문장들을 실제로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문장을 잘 쓰는 것보다 잘 버리는 것을 통해 좋은 작품이 완성됩니다. 하여, 이번 퍼포먼스에 참여하겠다고 동의한 작가분의 작품에 한해, 전시에 오시는 여러분들에게 대신 문장을 지워주십사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영향력의 작가들은 남겨진 문장들로만 된 작품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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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art : Vanishing x 영향력 : 喪
2016.09.06. - 10.15. (일/월요일 휴관)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0-6
하트에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영향력이 대신 문장을 버려드립니다.
kitchentablewriti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