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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Nov 17. 2021

혼자

   여자는 한 숟갈 떠서 물에 풀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된장찌개와 엄마가 보내준 김치에 밥을 먹고 밤 아홉 시가 다 돼서 집을 나섰다. 카페는 보통 걸음으로 십 분 거리였다. 열 시면 문을 닫는다는 그곳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빈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카드결제가 끝난 후였다. 가는 길에 문이 열려 있는 다른 카페를 본 기억도 없고 해서 여자는 이미 세 명이 앉아 있는 육인용 테이블 끝에 양해를 구하고 앉았다.

   앉자마자 미뤄둔 전화 세 통을 걸었다. 친구의 부탁을 전하는 전화 한 통, 편집 중인 책의 교정 내용을 확인하는 전화 한 통, 엄마와의 전화 한 통. 인디자인을 열어 파일 속에 빼곡하게 들어 있는 글자들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 진동벨이 울렸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채 다 마시기 전에 직원이 테이블마다 돌며 마감시간임을 알렸다.

   여자는 노트북을 챙겨 인근 수제맥주집으로 갔다. 다시 노트북을 열고 다음주면 인쇄에 돌입해야 할 책의 편집디자인을 이어갔다. 혼자인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바는 높이가 꽤 높아서 그곳에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려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치켜올리게 되곤 했다. 자기도 모르게 경직되어 있는 어깨를 툭 떨어뜨리기를 몇 번. 곧 그곳의 직원들이 주방 마감을, 잠시 후에는 맥주 주문 마감을 알려왔다. 조금 있으면 그곳에서도 떠나야했다.

   여자는 더이상 갈 수 있는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여자에게 집은, 그런 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곳, 웬만하면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할 곳,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여자는 집이 무서웠다.


   가급적이면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수치심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들어가는 소셜 미디어에서 여자는 오래 전의 유령을 다시 만났다. 알지 못하는 낯선 이의 계정에서 친구의 흔적을 발견하게  것이었다. 낯선 이가 최근에 올린 사진에 친구가 하트를 눌러놓은 것을 보고 여자는 알지도 못하는  계정에 올라온 수백 장의 사진을 순식간에 훑었다. 거의 대부분사진에 친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여자가 올리는 사진이나 글에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그러고 보면  친구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나 글에는 이런저런 반응을  남기면서 유독 여자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이유를   없었고 기준을   없어서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고 보면 그런 식으로 여자를 대하는 사람은  친구뿐만은 아니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여자에게만 그랬다. 여자가 어떤 것을 하든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그러한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지인들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더욱 면밀히 관찰했다. 여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이 어떤 글이나 사진을 좋아하는지,  여자의 글이나 사진은 좋아하지 않는지를 분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의 포스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명단만 길어질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기 어려워졌다.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일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것은 어떤 것을 올려도 항상 수십 명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친구의 맛집사진을 봤을 때였다.

   대학교에서 만나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여자와 그 친구는, 여자가 휴학하기 전 이 년 동안 거의 매일 붙어다녔는데, 늘 누군가의 고백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 여자는 대부분 옆에서 지켜보거나 다른 이의 고백을 대신 전하거나 다른 이의 마음을 대신 들어줘야 했다. 너무 오랫동안 반복돼서 너무 익숙한 일이었지만 여자는 어느날 그 친구와 단 둘이 이야기하다가 친구에게 이렇게 묻고 말았다. 왜 사람들은 너만 좋아해? 여자가 좋아하던 남자선배가 그 친구에게 고백했고, 그 친구는 막상 그 선배에게 별다른 호감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였다. 그 친구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여자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그게 내 잘못이야?

   왜 사람들은 너만 좋아해?라니. 그게 내 잘못이야?라니. 여자는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다. 이후로도 그 친구는 이전과 똑같이 여자를 대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치스러웠던 것은 여전히 그 질문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궁금했다. 왜 사람들이 그 친구만 좋아하는지, 왜 그 친구에게 구애하고 고백했던 수많은 남자들이 그 친구가 아닌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는지가 궁금했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생각은 이후 연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내다가 소셜 미디어 때문에, 그깟 하트 때문에, 다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한심하고, 그걸 알면서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일단 그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는 점점 더 떨칠 수가 없었다. 회사도 가기 싫어지고, 사람도 만나기 싫어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모두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회사 대표도, 동료도, 팀원들도, 회사에서 만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지만, 정작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대부분이 말로만 여자가 하는 이런저런 일을 두고 대단하다, 멋지다고 추켜세울 뿐 여자가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들에는 거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던 것이었다. 평소에 무심히 넘겨서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랬다.

   이틀 전 밤에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후 여자는 이틀째 회사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병가를 내고 침대에 드러누워 오직 잠만 잤다. 설거지거리가 쌓였고 빨래가 쌓였다. 방바닥에는 쓸지 않은 머리카락이 돌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 보며 누가 어떤 글에 하트를 눌렀는지 누구의 어떤 글이 하트를 많이 받았는지를 살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보낸 후에야 여자는 그 집을, 그 침대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러 늦은 밤에 무작정 외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여자의 엄마는 여자에게 항상 경고해왔다. 혼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혼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국 너를 정말 혼자로 만들 거라고. 그럴 때마다 여자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법이라고, 고독을 못 견뎌하는 사람은 타인도 결국 견디지 못할 거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엄마가 옳았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혼자 보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원망하게 되었으니까. 여자는 궁금했다. 사람들은 대체 이토록 처절한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수치스러울 정도로 외로워서 결국 더 수치스러운 원망과 욕망을 들키고 만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혼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초과하여서도 여전히 혼자인 사람들은 얼마나 더 기다릴 수 있을까.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줄이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는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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