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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pr 24. 2017

뭘 그렇게까지 초록

5일 만에 다시 쓰는 일주일기 #2


주말 동안 독립출판물 북페어에 참여했다.



테이블에 책을 깔아놓고 내가, 우리가 만든 책을 소개하고 판매했다.


작년 10월에 이어 올해 2회를 맞는 •서울독립출판축제(Seoul Zine Festival)•는 다른 축제와는 다르게 오로지 종이로 만든 것만 판매가 가능했다.



비록 경의선 책거리 운영 규정 상 책 외 다른 것은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는 했지만 독립제작물 중에서도 책, 엽서 같은 종이류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개성이기도 하다.



주말 북페어를 앞두고, 나는 목금 이틀 동안 출근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이틀이나 쉰 덕분인지 다행히도 주말에는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그 여파인지 먹고 있는 한약의 부작용인지 얼굴에 두드러기가 났다. 양쪽 눈꺼풀 위에 데칼코마니 같이 자리를 잡았기에 처음에는 다래끼인 줄 알았다. 다래끼니까 다래끼 약을 먹었고 당연히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결국 그건 오늘 이 시간까지도 여전히 얼굴 곳곳에 남아 있다.


울긋불긋 부은 데를 조금이라도 가려보려고 선글라스를 꼈다.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면서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이 속상했다. 나만 상대의 눈을 보고 상대는 내 눈을 보지 못하는 건 상대에겐 좀 불공평하다. 반대로 책을 잘 소개해야하는 입장에선 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눈을 가리고 있다는 점이 좀 불리하기도 하다. 이러나 저러나 좋을 것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행사는 그늘막 설치가 불가했고, 날씨는 너무나 맑았고, 내가 택한 우리의 책상은 해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방향이었다. 눈에 그늘을 만들어줄 만큼 챙이 큰 모자나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볕이 강했다. 그래, 좋다.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니까, 다래끼인지 두드러기인지 살균도 되고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째날 다른 작가가 알려준 사실인데, 내가 해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으면 대신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볕을 등지니까 책 보기가 더 편하다. 반대로 내가 해를 등지면 책 보는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고 볕과 싸워야 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도 좋다.



북페어 참여경험이 많지 않지만 웬만큼 사교성이 좋지 않는 한 참여하는 다른 작가들과 편히 인사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사 전에 작가들 단톡방에서 미리 인사와 대화를 나눴고, 다른 북페어에 비해 북페어 참여경험이 적거나 독립출판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팀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서로 더 의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역시나 막상 축제가 시작되고 보니 다른 제작자들에게 먼저 살갑게 말 걸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바로 옆에 앉은 작가와도 말을 나누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다른 제작자들이 먼저 와서 인사 건네고 책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봐주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반갑고 고마운데, 내가 막상 그렇게 하려니 선뜻 발과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저것 물어보고도 책을 사지 않으면 어떨 수 없이 미안함 마음이 들고 그 점이 힘들어서다. 북페어에 참가하면 대체로 내가 팔아서 번 돈 만큼 다른 책을 사는 데 쓰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모든 걸 다 살 수는 없고, 그래서 차라리 몰라서 못 산 걸로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아니 같은 공간에 그런 책도 있었어? 저런 것도 있었네? 하게 되기도 한다.


독립출판이라는 것 자체가 독자는 적고, 모든 비용을 스스로 충당하다보니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그 책이 내 취향과 맞는지와 상관 없이 응원해주고 싶은데, 가능하면 사서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점이 아쉽고 미안하다.


그런데 대부분이 비슷한 것 같다. 다들 먼저 말 붙이는 것이 어렵고, 물어보기만 하고 사지 않는 것이 미안하고, 그래서 끝나고 나서야 인사를 하거나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하고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이는 흔치 않은 기회인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서로 할 말이 끊이지 않을 만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경험도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이틀이나 되는 시간을 나는 언제나처럼 망설인 끝에 대체로 포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아마 이 점은 내게 다음 기회가 있다 해도 마찬가지겠지.



책을 함께 만드는 동료는 대구에서 살고 있기에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에는 혼자 참여했다. 그런데도 외롭지 않았던 건 친구들과 작가분들과 독자분들 덕분이었다.



약 사다주고, 간식 사다주고, 커피 사다주고, 모자 갖다주고, 나 대신 자리를 지켜주고, 영향력을 소개해주고, 화장실도 편히 다녀오게 해주고, 다른 책들도 슬쩍 구경하고 오게 해주고, 마감을 도와주고, 책을 사서 읽어주는 사람들, 주변 제작자들과 나눠먹을 피로회복제까지 나 대신 함께 챙겨주는 너른 마음.


막상 마주보고 할 수 있는 말은 고맙다는 것이 다지만, 혼자 있을 때 그 모든 걸 곰곰 생각해보면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운이다.


이틀 동안 우리는 숨을 데 없는 뜨거운 곳에서 직사광선과 맞선 덕에 앞으로 얼마간 더 힘을 내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 힘을 광합성했다.




오늘 집을 나설 때 만난 나무야, 초록잎을 가득 달고 있던 건강한 나무들아, 뭘 그렇게까지 초록이야 할 만큼 초록으로 충만하던 나무들아, 그렇게 싱그럽고 아름다운 이파리들을 달고 있는 건 너뿐은 아니란다. 지금 내가 그렇거든.



뜨겁던 빛과 그 빛으로 합성한 초록이 내 몸 안에 남아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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