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뱉는 소리

쌓이고 쌓였던 시절과 세월이 새어나오는 소리

by Mihyang Eun
추워?


같이 걷던 친구가 춥냐고 물었다.


아니, 별로 춥지 않은데?


라고 말하고 보니, 아, 내가 또 소리를 냈구나, 싶었다.


내가 또 소리 냈어?


그렇다고 한다.


그럼, 추운가 봐.


추워지면 나도 모르는 소리를 나도 모르게 낸다는 사실은 엄마 때문에 알게 됐다.


그건 이런 소리다.


ㅅㅇㅇㅅㅇㅇㅇㅅㅇㅇㅇ


추워? 아니. 추운 것 같은데? 아냐, 괜찮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나도 몰랐던 저 소리를 들키고 나면 엄마는 입고 있는 외투의 단추나 지퍼를 목 끝까지 잠가주거나 목도리 하고 나오지, 장갑 끼고 나오지, 목티 입고 나오지,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저 소리를 엄마가 들었다면 나는 추운 거다.


그건 몸이 내는 소리니까, 엄마는 내가 하는 말보다 내가 내는 소리를 더 신뢰한다.


아마 그건 조금씩 찬 공기가 몸속에 쌓여있다가 어느 순간 더 쌓아둘 수 없어 조금씩 내보내는 소리. 내가 만든 소리가 아니라, 몸이 뱉는 소리다.




며칠 전,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에 선 아저씨가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으, 쓰읍, 카앍, 과 같이 대체로 정확히 글자로 옮기기는 어려운 그런 소리였다.


또 며칠 전엔,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ㅉ, 쯥, 스읏, 과 같은 이 사이에 낀 무언가를 빼는 소리였다.


이런 소리들은 완벽한 타인의 입장에서 별로 듣기 개운한 소리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길어지면 좀 짜증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고 내고 싶은 소리를 다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제 내 친구들도 앉았다 일어날 때, 계단을 올라갈 때, 종종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를 낸다. 친구들이 만든 소리가 아니라, 친구들의 몸이 뱉는 소리다.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가 나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 라고 말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아이고, 소리만큼은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도 모르게 내는 소리들은 그러니까 그들이 부러 만들어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몸이 뱉는 소리인 모양이다. 시절과 세상의 온갖 소리가 온몸의 모공을 통해 스며들어가 쌓여 있다가 더 이상은 머물 공간이 부족해질 때 조금씩 새어나오는 소리, 사이다에서 김 빠지듯, 오래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새어나오는 소리.


아마 엄마가 TV를 보면서 자꾸 뭐라고 뭐라고 거들고 되묻고 중얼거리는 것도 너무 많이 쌓여버린 연륜이랄까, 인생의 경험들이 더 이상 머물 공간을 마련 못해 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소리겠지, 나도 나이가 들면 내 안에 쌓인 시간들을, 그 소리들을 어쩌지 못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뱉어내겠지.


아마, 그렇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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