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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Jun 09. 2017

삼십육년 전엔 그 등에 내가 업혀 있었겠지

생일기분으로 쓰는 일주일기 #8


엄마가 조카 보경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한창 낯을 가릴 때는 오랜만에 만나면 금방은 엄마나 나에게 잘 안 오려고 했는데 그걸 서운해하는 엄마를 보면 내 마음이 더 그랬다. 그러다가도 금세 엄마 손을 잡고 걸어다니고, 할미할미 부르고, 엄마 등에 업혀서 잠이 들고 하는 조카와 그걸 또 온마음으로 기뻐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좋다.

다같이 모이면 항상 엄마는 우리더러 먼저 밥을 먹으라고 하고 그러는 동안 조카가 밥상을 초토화시키지 못하게 혼자서 커버한다. 그렇게 어린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건 엄마로서도 너무 오랜만인 데다, 올케의 육아방식과 달라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을까 엄마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다가 보경이가 엄마랑 둘이서도 잘 놀고 잘 웃고 그러면 그게 그렇게 행복해보인다.



사람들은 요즘 중년여성들이 자기자신보다는 가족이나 자식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고 그들을 통해서 온통 행불행을 느끼는 데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야 한다 주장하는데, 그들이 그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이미 그런 가치들을 오랫동안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온 사람에게 너무 갑작스레 자아를 찾아라,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라 하는 것도 적잖이 폭력적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여전히 나이 서른 중반이 훌쩍 넘은 나를 돌보시도록 둔다. 엄마에게서 갑자기 내 엄마로서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과 불안과 걱정과 슬픔 같은 감정들을 빼앗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계속 나이를 먹고 있고 엄마와 나 사이의 돌봄지수는 앞으로 점점 더 비슷해지다가 결국 내가 엄마를 더 많이 돌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보경이가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기쁨이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엄마가 보경이를 안고 업고 놀아주고 한번이라도 더 웃는 걸 보려고 재롱 떨고 토닥여 재우고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자장가를 흥얼거리면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잠이 들었나 확인하려고 거울 앞으로 가 업힌 보경이의 모습을 슬쩍 살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경이만큼 어렸을 때 엄마가 바로 그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했겠지 생각한다.


조금씩 밥을 떠서 입에 넣어주고, 손을 잡고 지칠 때까지 같이 걸어주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라고 허리를 꺾어 등에 경사를 만들어주고, 무엇보다 항상 그렇게 사랑을 가득 담아 나를 봤겠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정확히 삼십육년 전에 엄마는 나를 처음 만났겠지, 세상에 처음 나온 나를 보고,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예뻐서 안고 또 보고, 그랬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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