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의 일 - 우리는 만나지 못했네

같은 공간에서도 서로를 찾지 않았네

by Mihyang Eun

몇 달 전, The xx 공연을 예매할 때만 해도 2월 13일이 언제인지 몰랐다. 그저 몇 달 후의 시간,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벌써 이렇게 됐어? 하며 맞이할 미래의 시간이라는 정도의 감각만 있었다. 설 연휴 직전의 화요일인지 몰랐고, 연휴 전날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한다면 하루 일찍 내려가야겠다 생각하며 예비 표를 끊어둔 날과 같은 날인지 몰랐다.


임박해서 표를 팔까 했지만 표를 살 마음 있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손해 보면서까지 팔고 싶지는 않았다. 팔리면 팔고, 팔리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는 마음으로 할인 같은 건 없이 표를 내어놓았는데 몇 명에게 연락이 왔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고 결국 내가 갔다. 연락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공연장에 가보고 알았다. 관객이 생각보다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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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도착하기 직전,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됐다. 보조배터리도 완전히 충전돼 있지 않은 상태여서 공연이 삼십 분이나 늦게 시작됐지만 그전에 다시 켜지 못했다. 함께 공연을 보기로 한 일행이 있었는데 결국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내 휴대전화 전원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켤 수 없었고, 친구의 휴대전화 전원도 명멸하는 중이었다는 걸 집에 와서 알았다.


공연이 끝나고 지하철이 싫어 버스를 탔다. 정해진 코스를 단조롭게 운행하는 버스가 아니라, 가는 길과 오는 길 회차지점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노선이었다. 회차가 많으므로 결국 언젠가는 노선도에 있는 내 목적지로 가겠지만 아무래도 반대로 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팔 분이나 기다려서 버스에 타고난 후에야 들었다. 버스를 타려고 길을 건넌 후 건너편 정류장을 마주 봤을 때, 몇 달 전 저곳에서 버스를 타며 친구와 헤어졌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쪽으로 건너와 확인한 노선도 상에도 분명 내가 내릴 정류소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집을 부렸다. 타야 할 버스는 팔 분 기다려야 했고, 길을 건너 저쪽으로 가는 데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지만 나는 고집스레 이쪽에 남아 어쩌면 더 먼 방법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버스를 탔다. 그러고서야 아, 잘못 탔나 하고 생각한 거다.


지금까진 혼자서 공연을 보는 건 아무렇지 않았는데 일행을 두고도 만나지 못하니 괜히 우울해졌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공연장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서로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끝나고라도 좀 더 열심히 두리번거려 볼 수 있었지만 우리는 또 비슷한 시각에, 꽤 빠르게 공연장을 빠져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 당분간은 혼자서 공연 보러 가지 말아야겠다. 프레임이 다른 결론에 도달한 걸 보면 그동안 나는 사실 혼자 보는 공연이 싫었던 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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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안토니오 타부키의 『꿈의 꿈』을 마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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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돈을 내고 주문한 책이지만 남양주 동네책방 '공간, 시도'에서 직접 골라 보내준 책이라 선물 같은 책이었다. 내 소설에는 꿈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처음 책으로 만들었던 단편 「모자이크」가 그랬고, 『영향력』에 실었던 「좋은 건가」, 「머리칼」에도 꿈 이야기를 썼다. 내가 쓰는 모든 소설에는 사실 항상 꿈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든 소설에 항상 꿈 이야기를 쓰는 건 너무 치사한 것 같아 꼭 쓰고 싶을 때 아껴 넣었다.


잘 때 꿈을 정말 많이 꾼다. 게을러서 다 기록하지도 기억해 내지도 못하지만 대부분 잠에서 깬 후까지도 꿈은 이어진다. 아무래도 스스로를 꽤나 억누르는 것 같다.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데 좋은 사람인 척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서 꿈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것 같다.


내가 반대로 탔다고 생각한 버스는, 막 하지 않는 도로 위를 금세 달려 지났다. 우리 동네로 오는 버스에는 항상 사람이 별로 없다. 이 글은 버스에서 쓴 글이다. 버스 탄 채 이만큼 썼으니 사실 꽤 멀리 돌아온 것이 맞나. 버스에서 글을 쓸 땐 왠지 시간을 발굴해 낸 것 같은 유치한 뿌듯함을 느꼈다.


휴대전화는 꺼져버렸고 더 읽을 책이 없을 땐 흔들리고 냄새나는 버스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나저나 요즘 부쩍 냄새에 민감해졌다. 쓰면서 냄새를 잊었고, 냄새난다는 사실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이유 있는 냄새가 됐다. 나는 방금 냄새를 이용한 건가. 어쨌든 지금보다 더 예민해진다면 아마 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 되겠지.


흔들리는 버스에서 글을 쓰면 글씨도 흔들리고 이야기도 흔들리지만, 요즘은 글을 통해 뭔가 정돈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건 뭐 의식의 흐름조차 그냥 손의 흐름이다. 손 가는 대로 쓰고,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면 모르는 대로 그냥 둬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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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쓴 걸 여기에 옮겨 적으면서 배경음악으로 피키 블라인더스의 킬리언 머피 목소리를 배경으로 깔아두었다. 발 끝에서부터 길어 올리는 듯한 저음이 아무리 잔인한 말을 해도, 그것은 외국어이므로 화면 없이 들으면 아름답게 들린다.


내일부턴 새 책을 읽어야지. 출근길 버스에서 눈 뜨기 힘들 정도의 직사광선에 맞서며 책을 읽을 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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