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yang Eun Jun 08. 2018

그 사이의 일 - 생일기분

오늘 생일이다. 내일 아침엔 엄마와 비행기 타고 하노이 간다. 꼭 그러자고 그런 건 아닌데 덕분에 생일기념여행 같은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됐고 7월부터 휴가가 리셋될 거라 예상해서 6월 휴일을 끼고 여행 계획을 잡았다. 사는 일은 언제나 예정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어서 6월부터 휴가가 리셋됐지만 다행히 한 달 만근해야 하루 생기는 방식은 아니라 여행은 예정대로 갈 수 있게 됐다.


엄마는 최대한 적게 휴가를 내기 위해 오후까지 일을 하고 저녁 기차를 탔다. 수서역에서 엄마 기다린다. 퇴근 후부터 엄마가 도착할 때까지 2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어서 주변을 걸어다녔다. 생일인데 뭐 하냐는 후배 전화에 “엄마를 기다린다”고 답했다. 생일에 나는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 오면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저녁도 혼자 먹어버렸다. 한 삼 주 정도 전부터 칼국수 먹고 싶었는데 먹고 싶다 생각하니 기회가 없거나 칼국수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수서역 안을 마지막으로 돌아다니기가 메뉴판에서 칼국수 사진을 발견했다. 엄마 기다리지 않고 칼국수 먹었다.


생일에 혼자 칼국수를 먹으면서 두 가지 양가감정을 느꼈다. ‘이런 날 혼자 먹으면서도 아무렇지 않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아무렇지 않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무렇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시차 없이 곧바로 뒤따라 왔다. 생일 그게 뭐라고, ‘이런 날’이라 생각하고 다른 날과 달라야 한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을까.


어릴 때, 그러니까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 기혼 친구보다 미혼 친구가 더 많았을 때는 대부분 생일을 미리 챙겼다. 미리 약속 잡고 미리 계획을 세워 촘촘하게 사람들을 만나 빽빽하게 축하 받았다. 다른 사람 생일도 그렇게 챙겼다. 생일 축하 인사도 12시 정각이 되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보냈다.


요즘은 보통 당일 아침부터 연락이 온다. 다른 사람 생일을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기 어렵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잊어버린다. 내가 그렇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조금씩 미리 가버린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 가만히 있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외모의 변화가 너무 있어) 시간의 흐름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데, 길가에 선 나무를 기차가 스쳐가듯이 그저 한 량의 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데, 일정 구간을 지나면 가속도가 붙는다. 미리 챙기던 일들을 당일이 돼서야 겨우 챙기다가 언젠가부터는 지나고 나서 문득 떠올린다. 아 이맘때가 누구 생일이었지, 지나버렸네.


기차는 그렇게 지나가고, 엄마가 기차를 타고 오고, 우리는 내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엄마를 태운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이의 일 - 우리는 만나지 못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