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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Jun 23. 2018

낮의 일 - 나쁜 물

우리 팀은 바풀이라는 회사에서 바로풀기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다 다른 회사에 인수됐다. 인재인수(라고 하지만 사실 CEO, CTO 인수) 형태라 다행히 그 팀원 대부분이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다. 서비스 인수는 아니라서 지난 5월 말을 끝으로 서비스는 종료했다. 유저들이 아쉬워 하는 걸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서버비만 있어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서비스고, 계속 운영된다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끝없이 서로 묻고 답하며 대가도 없이 돕는 일이 이어졌을 것이다.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던 서비스를 종료하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된 지 8개월 정도 지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초기에는 새로운 회사의 새로운 업무 방식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았다. 적은 인원이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며 일하다가 의사결정 과정이 길고 복잡하며, 같은 한국말을 쓴다뿐 사실상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단점이 있지만, 단순히 우리가 만들 서비스만 생각하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말하기는 좀 힘들다. 아무래도 조직이 생긴 모양이 다르고, 다르게 생겼으니까 돌아가는 생리도 다를 수밖에 없다.



와중에 일본에 출장을 가게 됐다. 우리 팀과 같은 제품을 일본에 출시하기 위해 새롭게 세팅된 팀과 일주일 동안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팀 리더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한 달 전 새로 합류한 사람이었고 조목조목 맞는 말만 하면서도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면서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한 것들, 포기하려고 하는 것들을 많이 떠올렸다. 가끔은 속으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마 그렇게는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꽤 자주.



불과 반 년 전의 우리 팀 같았다. 내부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 뭐가 가능하고 뭐가 왜 불가능한지를 명확히 모르고, 사실은 모르기 때문에 정말 그려야 할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그런 그들에게 뭐가 왜 어려운지 얘기할 때는 서글픈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래도 뭔가 더 잘 해볼 수 있겠다는 낙관적인 에너지를 얻어 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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