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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Jan 01. 2019

2017년 12월 7일 금요일의 일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2018 12 7일 금요일지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내 건강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걱정 많은 엄마가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건 유방검사였다. 내 나이쯤이면 결혼과 출산 과정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내 경우는 발병 확률이 더 높고, 발견도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엄마의 걱정을 유발했다.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나도 조금은 걱정됐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귀찮음과 게으름을 이기진 못해서 이번 검진 때 처음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거의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정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한 혹이 발견됐고, 치밀유방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유방은 젖샘과 유관 그리고 기타 조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성분들 중 지방이 많으면 지방성 유방, 섬유질이 많으면 치밀유방”이라고 한단다. 섬유질이 많으면 유방촬영(x-ray)에서 하얗게 보여서 혹이나 유방암 발견 민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치밀유방은 암 발병률이 높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는데, 발견이 어렵다면 발병이 방치되기도 쉬우니 결과적으로 발병률이 높다고 보는 것도 틀린 해석은 아닌 것 같다. 백인과 흑인은 지방성 유방이 많고 동양인은 치밀유방이 많은데 폐경이 가깝지 않은 젊은 여성의 90% 이상이 치밀유방이라고 할 정도로 동양인에겐 흔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유방’이라는 학계가 부여한 이름이 내 유방에도 부여된 이후로, 내 가슴을 평소와는 다르게 의식하게 되었다. 헤르베르트 플뤼게는 <아픔에 대하여>에서 “몸의 병, 병듦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자연의 사건이 아니며, 오히려 병든 장기가 몸 안에서 체험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심장병 환자의 사례를 들면서 “심장이 자신의 것이라는 체험은 심화한다. 그러나 동시에 심장이 자율적이라는 체험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음, 심장이 지니는 놀라운 독자성의 체험도 강해진다.”라고 덧붙였다.


아직 병이 든 것도 아닌데, 질병이 될 가능성(혹)과 질병 발견의 어려움은 내 몸의 일부를 더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만들었다. 평소엔 신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유별나게 의식하지 않았던 곳을 구체적으로 의식하고 상상하게 된 것이다. X측 N시 방향, Mcm의 결절이 발견된 이후 나는 결절이 있을 걸로 짐작되는 곳을 더 선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이미 결절은 완벽하게 자율적이고 독자적이어서, 그것이 나도 모르게 커지거나 모양이 변하더라도 전혀 통제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의사의 권고에 따라 일정 기간마다 추적관찰 하는 것뿐이다.


몸속 어딘가에서 생기고 자란 결절이, 나도 모르게 몸에 지녔던 어떤 인자가, 평소엔 그 기관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던 그 몸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으로 하여금, 자기 존재를 호소하는 셈이다. 한 번의 호소는 두 번, 세 번이 되기 쉽고 호소하는 목소리는 대개 작아지기보다 커진다. 그 덕분에 평소엔 아예 존재를 잊었거나 사실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장기들이 내 몸속 어디쯤에서 뭔가 자기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잠시나마 생각했다.


다행히도, 이번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지는 당장 어딘가의 질병을 진단한 것보다는 내 몸속 취약한 부위와 선천적으로 타고난 질병 유발인자와 호르몬 수치를 근거로 한 경고문에 가까웠다. (현대인으로서, 위장병은 질병으로 치지 않기로 한다.) 함께 검진받은 엄마는 나보다 글자 수가 1.5배 정도 더 많은 긴 경고문을 받았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기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장기들도 많아진다. 무관심 속에서 오래 방치된 존재들, 타고나기를 취약하게 타고난 존재들, 그저 몸을 구성하는 일부로 오래 지내왔으나 이젠 중심적인 것이 되고자 하는 존재들. 각자 독자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장기와 세포와 호르몬 들이 내 속에 촘촘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 몸이 너무 낯설다. 내 몸이라고 해서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닌 거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었던 나는 몸과 마음의 건전성을 연관 짓는 말들이 싫었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면 마음이 아픈 건 몸 관리를 못한 탓 같고,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고 하면 몸이 아픈 건 내가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써 얼마든지 통제하고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러지 못한 탓이라고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아프다는데 “평소에 관리 좀 잘하지.” 하는 것도 쉽게 해선 안 될 말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두 가지가 동시에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몸이 아픈 건 몸이 아픈 것이고, 마음이 아픈 건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내 몸이고, 내 맘이라고, 모두 내 통제 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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