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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Dec 28. 2018

2018년 12월 6일 목요일의 일

일본어 수업 선생님이 “美香さん, 今日は変わりですね。"라고 하셨다

2018 12 6일 목요일지


일본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미향 상, 오늘 가와리데쓰네(美香さん, 今日は変わりですね。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 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순간 “가와이데쓰네.”로 잘못 듣고 얼굴을 붉혔는데, ‘가와이’가 아니라 ‘가와리’였다. 그러니까, 왠지 평소와는 좀 달라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오랜만에 치마를 입었고, 힐을 신었고, 그래서가 아닌가 싶었지만 선생님은 치마를 입었는지, 구두를 신었는지는 보이지 않고 그냥 얼굴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최근에 늘 하던 만큼 화장했고 머리 모양도 똑같았으니까 옷을 좀 다르게 입은 거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선생님은 꽤 예민한 사람인 것 같다. 오늘 내가 달라 보이는 이유를 물었는데, “비밀”이라고 했고 정말로 이유를 있는 그대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조금 기분이 설레는 중이었다.


한동안 편하게만 입고 다니다가 요즘 들어 스타일을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순전히 인스타그램 광고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쇼핑몰의 스타일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예뻐 보였고 그렇게 입고 싶어서 쇼핑을 했다. 아직 전세보증금도 못 돌려받아 대출에 대출을 끌어 쓰는 주제에, 스타일을 바꾸다니. 하지만 바꾸고 싶었고, 뭔가를 바꾸고 싶은 욕망은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다. 나를 가장 마음에 들어할 수 있는 사람인 나 자신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신호니까. 바뀌고 싶을 땐 쉽게 바뀌지 않지만 바꾸고 싶으면 반드시 바꾸게 된다.


조금 색다른 기분으로 그렇게, 전혀 색다르지 않은 약간의 야근을 하고 여덟 시쯤 회사를 나섰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바람 사이로 눈발이 날렸다.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동네에서 예전 회사에서 동료로 만났다가 혼자 승진해서 상사가 된 H를 만나 숯불닭갈비를 먹었다. 신세 진 일이 있어 닭갈비를 사기로 했던 Y 씨에게 연락했지만 이미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중이라고 했다. H에게 처음 연락한 게 아니란 건 조금 미안하지만 아마 H는 그런 것도 별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친구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동네 친구이고 의외로(?) 어떤 얘기든 다 할 수 있다. 더구나 H는 국내에 있고 건강하기만 하다면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다. 만나면 주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술을 마신다.


입사 초기엔 H가 지금처럼, 언제든 뭐든 대체로 거절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다 하는 편이어서 나를 좋아하나 착각도 했는데 퇴사 후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지금은 더 편해졌다(라고 쿨한 척 쓰지만 나는 지금 말 그대로 쿨한 척 중).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거기다 가까이 사는 친구라니. 이렇게 쓰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친구잖아?


아무래도 예전 회사 동료인 만큼, 옛날 얘기나 함께 일했던 동료들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소재로 얘기하든, 빠지지 않고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그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대표이사이자, 그 회사를 처음 만든 CEO다. 내가 퇴사한 이후 새로운 서비스를 창업했고 지금은 또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최근 제주지역의 청소년들의 학업지원을 위해 무려 10억이라는 돈을 기부했다.


10억이라니 평생 한 번 만져보지 못한 돈이라서 일단 그 배포에 놀랐지만, 비록 내가 그만한 돈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돈 내놓는 일이 쉬운 일 아니라는 건 지금껏 지켜본 게 많아서 너무 잘 안다. 100억이 있든 1000억이 있든,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해서 10억이라는 돈이 척척 내놔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대단하게 느껴졌고, 내가 한 기부도 아닌데 왠지 내가 뿌듯했다. 비록 회사 다닐 때는 너무 힘들 때도 적지 않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가끔은 너무 냉정하고 가혹하게 몰아붙인다는 느낌을 받아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단 하나 J가 제시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단지 그 속도와 강도가 버거웠을 뿐이다. 지금 당장 너무 힘드니까 나중을 약속하는 것도 소용없게 느껴진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약속은 왠지 믿을 수 있었다. 그 믿음을, 비록 내가 보상받은 건 아니지만 좋은 일에 그렇게 큰돈을 선뜻 쓰는 걸 보니 왠지 내가 보상받는 기분을 느꼈다(면 이건 좀 오버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 왜일까. 이것도 일종의 보상심리일까. 막상 이렇게 정신승리라도 하고 싶은 건가. 어쨌든, 내가 보상받았다고 느끼면 뭐 된 거 아닌가.


수많은 CEO가, 사장이, 고용주가, 거짓으로 피고용인을 홀려 부려먹는다. 한 친구의 회사 사장은 직원들을 떡볶이에 비유한 적도 있다. 사람 쓰는 일이 분식집에서 떡볶이 사 먹는 거만큼 쉽고 싸고 별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예전에 다닌 회사 대표이사라는 사람은 직원들을 '사장님(나는 은 사장이었다)'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방식으로 주인의식을 강요하며 때와 장소를 가라지 말고 일하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사장들이 있고, 사실 그런 사장들이 더 많지만, 내 경력 가운데 그래도 정말 지킬 약속을 하는 CEO가 이끄는 방향으로 함께 뛰어본 경험이 있다는 거, 비록 도저히 끝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해 중도에 하차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때의 경험이 이후 이직할 때도 인정받는 경력이 됐다. 그리고 안다. 아직 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함께 일하는 모두가 적어도 비슷한 방향을 향해 함께 가보는 경험 같은 거 또 한 번 더 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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