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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Jan 01. 2019

2018년 12월 9일 일요일의 일

어제부터 집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2018 12 9일 일요일지


어제부터 집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예전 집에서는 영하 18도일 때 일어났던 일인데, 지금 집은 아무래도 같은 층에 우리 집밖에 없어서 그런지, 영하 10도에 온수가 얼어버렸다. 어제는 어차피 급히 씻고 나갈 일이 없었으니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냥 날이 풀리길 바라며 수도마다 물이 쫄쫄쫄 흐르게 해 뒀을 뿐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그러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에, 얼음장 같은 물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양보해도 양치와 손 씻기 정도밖에 없었다. 얼굴과 두피와 몸은, 안 된다. 못한다. 


요즘 인터넷에는 어떤 방법이든 다 있으니까 뒤늦게 검색을 시작했다. 과연, 혼자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있었다. 온수배관에 따뜻한 수건을 여러 번 감아 녹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 방법은 알아냈는데, 여러 배관 가운데 온수 배관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보일러가 있는 밖은 춥고, 아무리 노려 봐도 알 수 없었다. 째깍째깍 시간은 가고 잠시 후면 폭탄은 터지는데, 어떤 선을 끊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철물점 하는 Y 씨에게 보일러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알고 보니 어떤 게 온수배관인지는 보일러 하단에 쓰여 있었다. Y 씨는 그 선을 드라이기로 살살 녹여주는 방법을 권했다.


기다란 멀티탭을 연결해 드라이기로 배관을 살살, 녹였다. 보일러도 결국 전기로 돌아가므로 보일러 가까이에 콘센트가 있을 거라는 건 생각도 못하고 집 안에 있는 콘센트에 다시 멀티탭까지 연결했다. 무식이 죄다. 그러고 얼마나 오랫동안 드라이기를 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추웠고, 머리를 말릴 때처럼 그렇게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조금 시도하다가, 물을 팔팔 끓였다. 끓는 물을 수건에 붓고 물기를 짜낸 후 배관에 감쌌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수건은 금방 싸늘하게 식었지만, 핫팩의 급격한 뜨거움이 언 손을 녹여주는 것처럼 얼어버린 온수배관도 녹여주길 바랐다. 그렇게 대여섯 번 정도는 반복한 것 같다, 아주 끈기 있게. 하지만 오후 3시 가까이에 시작한 온수배관 녹이기는 오후 8시가 되도록 효과를 보지 못했다. 더 밤이 깊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털양말을 신고 가장 두꺼운 롱패딩을 꺼내 입고 무장해 드라이기로 녹이기를 시도했다.


마치 총을 겨누듯이, 배관을 향해 겨누고 천천히 뜨거운 바람을 쪼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을 떠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실패였다. 하긴, 안톤 쉬거라면 오히려 얼어붙게 만들지, 누구를 녹이겠어, 지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쉽게 항복했다. 밤이 깊을수록 온도는 더 떨어질 테니 밤새 배관이 녹아 아침에 물이 나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완전히 체념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서, 마침 버리려고 내어놓은 청바지로 배관을 촘촘히 감고, 수년 전에 샀지만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샤워 커튼을 꺼내 배관 주변을 포근히 덮어주고, 마지막으로 빈 공간을 수건으로 채워 넣어 최선을 다해 찬 공기를 막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순간의 뜨거움은 아니라도, 은근한 따뜻함이 배관을 녹이기를 바라면서.


온수관이 얼어있는 동안 종일 내가 한 일은 넷플릭스를 보며 게으름 피우는 거였다. 한동안 넷플릭스를 결제하지 않았었다. 넷플릭스의 세계에서 시간의 경계를 잊는 일이 두려웠다. 모든 할 일을 제쳐두고, 지금 보는 이 시즌을 마저 보겠다는 무의미한 결심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무료인 푹티비 라이브 채널을 틀어두곤 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꾸 뭐라도 틀어두는지 알 것 같았다. 가끔은 빠져서 봤고 가끔은 보지도 않았지만 푹티비를 늘 틀어뒀다. 그러다가, 이럴 바엔 차라리 잘 만든 영상을 보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11월 말쯤 넷플릭스를 다시 결제했다.


처음엔 이것저것 탐색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동안의 시청기록을 기반으로 넷플릭스가 추천해준 드라마를 봤다. 낮에 본 건 <탈주자>라는, 멕시코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는데 엄청나게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하루 만에 시즌 하나를 다 봤다. 들리는 (아주 약간의) 스페인어를 듣는 게 재밌고 어쨌든 어떤 이야기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웬만큼 재미없지 않고서야 그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은 본능 덕분에.


그러다 온수관 녹이기를 포기한 시점부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드라마 또 하나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문제였다. <베를린의 개들>이라는, 터키 출신 축구 선수의 살인 사건에서 시작해 독일 사회에서의 이민자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였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독일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영화 <뮌헨>이 떠올랐다.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마저 빼다 닮았는데, <뮌헨>은 과거에 일어난 실화 기반 영화지만 <베를린의 개들>은 픽션이지만 바로 지금 거기서 현재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을 다루는 드라마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이야기.


요즘 잘 만들어진 드라마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이 드라마엔 참 사람 같은 사람밖에 안 나온다. 그러니까, '완벽해서 비현실적인 사람'은 없다. 최소한 조금씩은 나쁘고 조금씩은 비겁하고 누군가를 속이고 자기 자신도 속이면서 불안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산다.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저 사람은 주인공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나쁜 일을 당하진 않을 거라고, 죽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을 수도 없다.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지금 당장 죽거나 나쁜 일에 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된다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너무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세부사항은 전부 다르지만 누구도 행복하기만 하거나 안정적이기만 하진 않다는 큰 틀에서는 다 똑같아서, 보는 게 괴로운데도 그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출근 걱정이고 뭐고 거의 동틀 무렵까지 보고 말았다는 이야기. 막상 해가 뜨고 있다는 건 외면하고 싶어서, 창문을 등지고 누워서 버티고 버티면서 보는 데까지 보고 아침에 울면서 일어났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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