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냄비에 물을 끓여서 씻었다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지
아침엔, 냄비에 물을 끓여서 씻었다. 뜨거운 물을 차가운 물에 조금씩 섞어 아끼고 아껴가며 머리 감고 세수하고 출근했다. 큰 냄비가 없어서 개중 가장 큰 냄비 하나와 주전자로 물을 팔팔 끓여 씻어낼 것만 겨우 씻어냈다.
예전에도 냄비에 물을 끓여 씻은 적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집에서 살 땐 엄마가 항상 찜통에 물을 끓여줬고, 진주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의령 외삼촌댁에서 다니게 됐을 땐 외숙모가 아침마다 찜통에 물을 끓여줬다. 펄펄 끓는 커다란 찜통을 옮겨주면 나는 바가지로 뜨거운 물을 퍼, 얼음장 같은 물에 섞은 후 씻었다.
주말 동안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는 핑계로 집에서 종일 넷플릭스만 본 탓에 기분이 가라앉았고, 엄마 전화도 우울하게 받았던 게 마음에 걸려서 퇴근길엔 최대한 명랑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정황을 소상히 전하며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왠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화 너머 엄마도 그 소리가 제발 물소리이길 함께 바라고 있다는 걸 느끼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온수가 콸콸 나오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한 건지, 아까운 물을 너무 낭비한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 했고 따뜻한 물에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하게 기뻤다. 아침마다 냄비에 물을 데우지 않아도 됐고, 커다란 찜통을 사야 하나 했는데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얼어버린 온수 배관을 녹이기 위해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내가 한 일들이 효과가 있었다는 게 기뻤다.
스쿼시 가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많이 웃고, 흰소리도 많이 하면서, 기분 좋게 스쿼시를 쳤다. 그러다 라켓을 잘못 휘둘러 내 왼손을 힘껏 때렸고, 피가 맺혔다. 항상 너무 잘 치려고 하다 보면, 너무 세게 치려고 욕심내다 보면 빗맞아, 공 대신 내 몸을 치게 된다. 이거 너무 교훈적인 얘기라서 안 쓰고 싶었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번 공은 못 칠 것 같아, 하며 툭 갖다 대면 의외로 잘 맞을 때가 있지만, 이번 공은 제대로 한번 때려보자, 하고 휘두르면 꼭 허공을 가르거나, 내 몸을 때리거나, 벽을 너무 세게 치게 된다.
그렇게,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성찰을 하면서 집에 오는 길엔 길에 버려진 커다란 곰인형을 봤다. 커다란 곰인형은 반드시 그렇게, 비닐도 없이 홀로 버려진다. 작은 인형들은 봉투에 담기기라도 하는데 큰 인형은 대체로 맨몸으로 버려진다. 담을 만한 크기의 봉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들은 오히려 그렇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게 왠지 안쓰럽다면 이거 너무 인형에 감정이입 하는 거 아닌가, 경계하게 되지만 그런 마음이 이미 드는 순간, 오히려 그 생각을 더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지금부터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부터 코끼리 생각만 하게 되듯이.
월요일이다, 벌써 십이월의 1/3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베를린의 개들>을 이어서 볼 예정이다. 피곤하니까 자연스럽게 잠들기를 바라면서, 부디 어제처럼 다시 아침의 광명을 뜬눈으로 맞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동시에 다음 이야기를 계속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잠이 들겠지. 십이월 들어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 건 나 자신을 위한 일종의 계몽운동 같은 것인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 확실해졌다. 나를 혁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는 내일 아침에도 오늘 아침과 똑같은 후회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