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가장 비싼 헤어컷을 했다
2018년 12월 11일 월요일지
태어나서 가장 비싼 헤어컷을 했다. 웬만하면 대구 가서 머리(카락) 자르는데, 한동안 대구 못 갔고 당분간 못 갈 것 같아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카락)를 잘라냈다. 너무 비싼데, 서울사람들은 원래 그만큼 돈을 내고 머리를 잘라왔다고 한다. 눈 뜨고 머리카락 베이는 서울..
서울 산 지 만 팔 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지만 서울에서 머리카락 자른 횟수는 손에 꼽는다. 심지어 (지금 해 보니까) 하나하나 다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 집이었던 대림동 시절엔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8개월 정도로 짧게 살았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한 달은 병원에서, 한 달 반은 해외에서, 또 한 달 정도는 대구에서 지내느라 절반 정도는 비웠던 동선동 시절에도 기억하는 한 없다.
서울에서의 첫 헤어컷은 신림동 살던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꽤 오래 참고 길렀던 머리를 숏컷 해버렸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갑자기 머리를 짧게 잘랐느냐고, 어떤 심경의 변화나 신변의 사건 같은 걸 넌지시 전제한 질문을 해왔다. 내 대답은 "그냥 자르고 싶어서"였고, 실제로 조금 충동적으로 자르긴 했다. 근데 그것도 되짚어 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머리 자르기 얼마 전 옛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갔었다. 장마철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곧 올 것처럼 혹은 바로 직전까지 비라 내렸던 것처럼 습한 날이었고, 내 얇고 힘없는 곱슬머리는 마치 서로 짝이 맞는 원소기호가 서로 만났을 때처럼 습기와 결합해 부스스해졌다. 그래도 나 대로는 결혼식이라고, 나름 결혼식에 맞는 멋을 부리고 갔는데 거기서 만난 옛 직장 동료 하나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달타냥 같네요." 오랜만에 만났고,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땐 그냥 웃어넘겼다. 그리고 잠시 후에 머리를 그냥 묶어버렸던가.
누군가의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외모를 아무렇지 않게 농담거리로 만드는 사람이 있고, 예민하다거나 까다롭다거나 하는 평을 듣기 싫어 웬만한 헛소리는 그냥 참거나 심지어 웃어 넘겨주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시간이 얼마간 흐르는 동안 나는 그게 얼마나 내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그저 그 후부터 조금씩 머리를 좀 자를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고 그런 생각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지금 당장 이 치렁치렁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끊어내어버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로 가는 길에 충동적으로, 보이는 아무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카락을 아주 싹둑 잘라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서울에서 머리를 자르게 됐다. 아무래도 커트머리는 조금만 길어도 보기 싫어지니까.
머리카락은 생물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한 달 동안 일 센티미터 정도 자란다고 하니, 하루에 0.33 밀리미터 정도 자라는 셈인데 0.33 밀리미터는 육안으로 식별은 어렵지만 마음의 눈으로는 충분히 보인다. 그러니까 불과 바로 어젯밤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던 머리 길이가 오늘 아침에 보면 견딜 수 없이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아침에 집 거울로 볼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가도 회사 화장실 거울로 보면 왜 저래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실제로 하루 0.33 밀리미터 정도 자라는, 그러니까 시간당 0.013 밀리미터, 분 당 0.0002 밀리미터, 초 당 0.000004 밀리미터씩 계속 자라고 있는 생물이니까, 볼 때마다 다른 것이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서의 첫 헤어컷 이후로 나는 몇 번을 더 충동적으로, 갑자기 머리를 잘라야 했다. 일하다가 갑자기 이 머리카락으로는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 점심시간 되자마자 뛰쳐나가기도 했고(그곳에서 귀를 베였다), 성수동으로 이사 온 후엔 대학가에서 한 번, 동네에서 한 번, 동네 다른 미용실에서 또 한 번 정도 더, 다음에 대구 가는 그 날까지 참을 수 없어서 잘랐던 것이 도합 다섯 번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섯 번 동안 한 번도 이만 원 넘는 돈을 내본 적은 없었는데, 바로 오늘 28,000원에서 네이버예약으로 첫 방문 10퍼센트 할인을 받아 25,200원을 내고 자르게 된 것이었다.
미용실과 헤어디자이너를 함께 소개한 일본어 선생님께 너무 비싸다고 말했더니, 요즘은 대체로 그 정도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만한 돈을 내며 머리를 잘라온 지 굉장히 오래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대구 사는 사람과 서울/경기권에 사는 사람의 헤어숍 세계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던 것이었다. 全然違いましたね。。
다행히 소개받은 헤어디자이너의 실력은 만족스러웠다. 디자이너는 머리를 예쁘게 기르기 위해서는 삼 주 정도 후에 다시 한번 와서 머리를 다듬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거울을 통해 헤어디자이너와 눈을 맞추며 일말의 고민도 없다는 듯이, 삼 주 정도 후에는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올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다음번 대구에 가게 되기 전까지 내 머리카락이 그렇게 못 견디게 길어버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