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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ug 20. 2019

아무쪼록, 비건

되어보는 일


퇴근길에 탄천변을 걸어 정자역까지 왔다. 그 길로 가기 싫다, 는 생각이 들었고, 급할 것도 없고 날도 선선하니 강변을 좀 걷고 싶다, 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길, 이라 함은 나름대로 최단거리 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퇴근길에 거의 일 년을 지나다닌 골목길이다. 고깃집과 술집 등 음식점이 즐비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먹고 마시다 나와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많은 골목길이다.

그 길로 가기 싫다, 는 생각을 하자마자 나도 내가 낯설었다.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하는 질문이 나에게서 나에게로 솟구쳤다. 열흘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너무 큰 괴리가 있고 이미 건너와 버린 큰 다리가 있는 기분이다.

고깃집 많은 골목이 싫어진 건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읽고 나서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비건이 된 건 물론 아니고 아직 아니다.



고깃집이 많은 그 길이 싫다, 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머리로는 고깃집 그 자체가 싫어진 거라고(싫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그 골목을 지나며 맡게 될 냄새를 통해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봐 그걸 피하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혼자 생각하고 김한민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 듣는 며칠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하지만 꽤 급작스럽게 나도 내가 낯설게 느껴지는 생각이나 발견 들과 마주할 때가 자꾸 많아졌다. 아직은 많은 기로에 있고 이게 얼마나 갈지도 모르지만 이미 알아버린 사실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여름 천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여름 냄새가 많이 났다. 그리고 겨울에 걸었을 때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원래 차가운 것보다 따뜻한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지니까? 하고 혼자 결론을 내버리려고 할 때,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수면이 높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따라 나온 생각은 일부러 무시하고, 마음속으로 다시 말했다. 원래 따뜻한 것이 차가운 것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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