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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pr 25. 2020

정은, <커피와 담배>를 읽다가

출판사 '시간의흐름' > '말들의 흐름' 연작을 읽다가 생각난 것들

'시간의흐름'이라는 출판사에서 '말들의 흐름'이르는 제목으로 열 권의 책을 출판한다. 현재 <커피와 담배>, <담배와 영화>, <영화와 시>까지 나왔다.


<커피와 담배>를 읽다가 커피와 담배와 관한 기억들이 딸려 올라왔다.


아래는 '말들의 흐름'에 관한 출판사의 설명.

'말들의 흐름'은 열 권으로 하는 끝말잇기 놀이입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앞사람의 두 번째 낱말을 이어받은 뒤,
또 다른 낱말을 새로 제시합니다.
하나의 낱말을 두 작가가 공유할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쓰여지지 않은 문학으로서 책과 책 사이에 존재하며,
오직 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재합니다.

식어버린 커피의 맛


커피 맛을 알게 된 건 친구 B 덕분이었다. 아주 적절하고 낭만적이게도, 파리에서였다.


당시 나는 스웨덴 남부의 작은 도시 벡쿼(Växjö)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중이었고, B는 파리 여행 중이었다. 학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 나는 30일짜리 유레일 패스를 끊어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는 파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영국에서 시작해 폴란드를 거쳐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던 내가 파리에 도착한 건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파리에선 B가 지내고 있던 민박집에서 지냈다. 파리에 사흘이나 나흘쯤 머물렀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 민박집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는 게 없다. 그 집에서 처음으로 커피맛을 알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이미 한 민박집에서 오래 머물고 있었던 B는 처음 도착한 내가 보기에 마치 그 집의 일부 같았다. 파리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 민박집 일을 돕고 있었던가. 무려 16년 전의 일이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문제는 아니겠지. (이걸 쓰고 나서 물어보니 일을 돕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B는 커피를 좋아했다. 특히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셨다. 당시의 내게 커피는 '너무 달고 뒤끝이 찝찝한 맛이 나는 음료'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내가 마셔 본 커피는 대체로 모두 믹스 커피로, 마시고 나면 어떤 끈끈한 점막 같은 것이 혀를 둘러싸는 기분을 남겼다. 요구르트를 먹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B와는 이후로도 여러 번 함께 여행했는데 늘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마셨다. 그날도 B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권하는 B에게 나는 커피를 싫어하는 이유를 말했다. 아마 앞 문단 내용을 거의 그대로 말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프림 때문일 것 같다고, 블랙커피를 마셔보라고, B가 권했던 것 같고.


집에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는 것은 거의 내 몫이었고ㅡ커피 2스푼, 설탕 2스푼, 프림 2스푼ㅡ설탕과 크림이 1스푼이냐 2스푼이냐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프림을 넣지 않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에 B의 권유는 굉장히 생소했다. 감히 내가 시도해볼 거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의 부름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블랙커피에 도전하게 된다. 뜨거운 물과 커피와 설탕만 든 커피.


낯선 맛이었다. 검고 뜨거운 강에서 초콜릿을 먹는 기분이었달까. 사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때요?

괜찮네…….


커피는 식어갔고, 나는 예의를 갖추고자 식은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그때, 커피가 내게 왔다. 뜨겁고 단 것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떤 세계가 상온의 온도에 가까우며 바닥에 깔린 단 것에서 발현했다.


그 날 아마 싸이월드에 이렇게 적었던 것 같다. 커피는 식어버린 후가 가장 맛있다고.


이제 더는 설탕이나 시럽도 넣어 마시지 않지만, 미처 녹지 못하고 바닥에 깔려 있던 설탕의 흔적을 스쳐온 식은 커피의 맛이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비극의 전조였다. 커피맛을 알게 된 나는 유럽을 여행하는 내내 화장실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으니까.



커피에 취약한 사람 1


커피 맛을 알게 된 직후, 나는 에스프레소행 급행열차를 탔다. 아메리카노조차 건너뛰고(그땐 아메리카노라는 게 아예 없었던가) 에스프레소로 바로 넘어간 것이다. 우리는 전철과 도보를 이용해 파리를 구석구석 돌아다녔고, 들어가고 싶은 카페가 보이면 그냥 들어갔다.


그럴 만한 여유가 있었고, 추웠고, 대체로 흐렸고, 무엇보다 그러고 싶은 카페가 너무 많았다. 나는 당시 30만 원의 예산으로 여행 중이었다. 30일 중 10일 정도는 야간열차에서 잠을 자거나 교환학생 하면서 만난 친구 집에서 자는 식으로 숙박비를 아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비교적 여행 초반이어서 부릴 수 있는 패기였던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마음껏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건 커피 가격이 비싸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심각한 핸디캡을 부여하는데, 커피의 이뇨작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에펠탑 주변을 뛰어다니며 애가 끓도록 화장실을 찾아다녔던 것이나(이브에는 모든 공공시설이 일찍 문을 닫았고 그건 유료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고흐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는 작은 기차 안에서(기차 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풍경 따위 집어 치고 화장실 어서 나와라, 하는 기분으로 마음을 졸이고 오금을 조여야 했던 것도 다 바로 커피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커피에 취약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강렬한 경험은 내게, 혹은 같이 여행하던 B에게조차 커다란 트라우마를 안겼다. 이브에는 B와 민박집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인 C가 함께였는데, 처음에는 나만이 화장실을 갈구했으나 마지막에는 셋 다 절박한 상태가 되어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그때 알게 된 건 파리의 크리스마스이브는 관광객을 위한 날이 아니라 파리 시민을 위한 날이며, 화장실 열쇠를 갖고 있는 모든 파리 시민이 저녁 6시 이전에(어쩌면 그보다 더 전에) 퇴근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에펠탑 주변 유료 화장실, 지하철 역사, 주변 큰 건물 등 가볼 만한 데는 다 가봤지만 결국 화장실을 찾는 데 실패했고,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한 피자집 문을 열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손님이 아닌 사람이 식당 화장실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내 표정을 본 점원은 기꺼이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내게 인류애라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그 점원의 지분도 있다.


그래서 그 후 커피를 포기했는가 하면, 그러지 못했다. 파리의 아무 카페, 아무 카페에 아무렇게나 들어가서 마시는 커피, 그걸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더구나 이제 막 그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는데.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화장실이 보일 때마다 화장실을 가는 거였다. 지금 가고 싶지 않아도 언제 가고 싶을지 모르고, 정작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이 없을 수도 있었다. 없는 예산을 화장실에 써야 하는 것도 더는 문제 되지 않았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여행 경비를 줄이려고 참아왔던 것이 N회라면, 크리스마스이브 이후로는 가고 싶지 않을 때마저 갔으므로 그 N회를 고스란히 채웠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의 ‘XX 보존의 법칙’ 같은 걸 믿는다. 이를테면, 어렸을 땐 귀여운 것에 전혀 관심 없었던 내가 지금 귀여운 것에 열광하는 것이나, 잘 울지 않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울보가 되는 것이나, 모든 것엔 사람마다 다 총량이라는 게 있고 그것이 인생 전체에 걸쳐 고르게 분배되거나 한 시기에 몰릴 수는 있지만 결국 총량을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XX 보존의 법칙'의 기초를 정립한 것도 아마 그쯤이었던 것 같다. 화장실 가는 횟수 총량의 법칙, 혹은 유료 화장실에 쓴 돈 총량의 법칙.


커피의 이뇨작용에 취약하다는 것은 커피를 알게 된 것과 동시였다면, 카페인에 취약하다는 걸 깨달은 건 무려 15년이 흐른 후였다.



커피에 취약한 사람 2


커피를 알게 된 후 약 15년 동안 커피 마시면 잠을 못 잔다는 사람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카페인 영향을 전혀 안 받는 것 같아.


커피와 잠에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다고 굳게 믿으며 15년 동안 불면의 밤을 즐겼다. 새벽에 깨어 있는 게 너무 좋았고,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거나 개운하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줄 알았고, 깊이 잠들지 못하고 하루 평균 3개의 꿈을 기억해 내는 것 모두 커피와 상관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던 친구 H가 잘 자고 싶다고 호소하는 내게 커피를 끊어보라고 했다.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아니다. 규칙적으로 자지도 못하고 깊이 자지도 못한다. 하루 정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잘 잤다 싶으면 다음 날은 잘 못 잔다. 다음 날 잘 못 잤으니까 그다음 날은 너무 이른 시각에 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잠든다. 그러면 두어 시간 자다 깨서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초저녁에 또…….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살기에 직장인이라는 신분은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엔 늘 피곤했다. 저녁에도 피곤했는데 희한하게 밤만 되면 다시 쌩쌩해지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대로 못 자는 일이 점점 고통으로 느껴졌다. 자발적으로 즐기던 새벽도 조금씩 무서워졌다. 내가 이 시각까지 깨어있다는 기쁨은 내가 이 시각까지 깨어있다니 하는 두려움으로 바뀌는 날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아 개운해 또는 상쾌해 또는 잘 잤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기억하기로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감각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 또한 친구 G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커피를 끊다니, 커피를 어떻게. 무엇보다 내가 잘 못 자는 건 커피 때문이 아닌데.


그런 조언을 받았을 즈음 나는 스마트워치를 착용 중이었다. 신체 활동과 수면 상태를 기록해주는 시계였는데, 수면 시간과 깊은 잠, 얕은 잠, REM, 깨거나 뒤척인 구간을 알려주는 신박한 앱을 통해 내 수면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잘 자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일단은 C의 조언대로 테스트해봤다. 아예 끊는 건 너무 힘들고,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주는 기쁨 또한 버릴 수 없으니 한동안은 오전에만 커피를 마셨다.


며칠 간의 테스트 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내 수면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꼈고, 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전에만 마시던 커피를 아예 커피를 마시지 않아 보는 시도도 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은 마신 날에 비해 좀 더 일찍 잠들 수 있었고 좀 더 깊이 잘 수 있었다. 일찍 잤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가능했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건 아니었지만 덜 힘겹게 일어나는 경험도 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야행성이라고, 밤을 사랑하며, 밤과 어울리며, 남들처럼 매일매일 자는 주기보다는 사흘에 이틀 정도 자는 주기가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다 커피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니.


친구 J는 말했다. 내가 그동안 내 몸을 그렇게도 모를 수 있었던 건 젊음 덕분이라고. 늦게 자도, 덜 자도 지치지 않고 이겨낼 젊음과 체력이 있었지만....... 이후의 말은 굳이 적고 싶지 않다.


요즘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과 매일 싸운다. 어떤 날은 이기지만 대체로 진다.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은 백전백패다. 여타의 승패와 다른 것은 이겼을 때보다 졌을 때 더 큰 행복을 얻는다는 것.



모닝커피


나에게 커피를 가르친 B는 나에게 커피와 관련된 가장 큰 환상을 심어준 친구이기도 하다.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같이 여행했는데, 한 번은 갑자기 그렇게 하기로 되어서 동해 묵호항에 간 적이 있다. 옛날 다방에 꽂혀서 묵호항 주변에 있다는 아주 오래된 다방을 찾아 간 거였다.


우리는 귀엽게 촌스러운 한 관광호텔에 묵었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해 묵호항 주변과 논골담길이라는 벽화마을을 꼼꼼히 돌아다니다가 회에 소주를 먹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언제나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B가 없었다. 먼저 일어나 산책을 나갔겠거니 했는데 테이블 위에는 그러겠다는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니다, 쪽지를 놓고 나갔던 건 로밍을 하지 않아 서로 연락할 수 없었던 네팔의 포카라에서였던가.


그 관광호텔에서는 내가 더 심하게 늦잠을 잤거나 혹은 B가 산책할 수 있는 코스가 짧았거나 해서 이미 산책을 끝나고 돌아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뒤늦게 눈을 뜬 내게 따뜻한 커피를 내밀었다.


동해시의 한 호텔에서 눈을 뜬 일요일 아침, 커피를 건네는 B에게 나는 청혼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B는 이미 결혼했으므로. 결혼하지 않았다한들.


그 후 소박한 꿈이 생겼다. 내가 눈을 뜨면 먼저 일어나 있던 함께 사는 사람이 내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것. 가끔은 반대의 일도 일어나는 것.


하지만 아직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 B는 내게 커피맛을 알려주고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이 환상일 뿐이라는 것까지 알려준 진실된 친구다.



4:1


친구 넷과, 그러니까 나까지 다섯이 제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넷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우리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으므로 그들은 모두 나를 선배라고 불렀다. 그 넷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담배를 피웠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담배를 끊은 듯 보였다.


그들은 선배와 후배 사이로 만나서 그랬는지 내가 비흡연자여서 그랬는지 내 앞에서는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함께 술을 마시다 담배를 피우게 되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래서 그들을 알고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들이 흡연자인지도 알지 못했다.


제주에서는 밴드를 하던 S언니가 운영하는 김녕의 한 펜션에서 묵었다. S언니와 최근까지 연락한 건 나뿐이었지만 우리가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는 B와 Y도 함께였다. 그 첫 만남의 기억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S언니와 K오빠는 종종 B와 Y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다 무려 십오 년 만에 재회한 거였다. 그리고, S언니도 흡연자였다.


그날 밤 우리 여섯 명은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이야기했다.


처음엔 하나 혹은 둘씩, 짝지어서 담배를 피우러 베란다에 나가던 그녀들은 어느 순간 다 같이 나갔다.


먹던 귤과 새우와 회와 술이 너저분하게 놓인 상 앞에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으면 베란다에서 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술을 마시고 시간이 깊어갈수록 그들은 더 자주 베란다로 갔고, 혼자 남아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같이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따라 나갔는데 연기가 자욱한 베란다에서 흡연자와 똑같은 감각으로 즐기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냥 갔다 오라고, 나는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고 그들이 끽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담배는 술을 더욱 취하게 만드는지, 결국 나를 제외하고 모두 굉장히 취한 그들은 동틀 무렵 바다 수영을 하겠다고 수영복도 없이 무작정 바다로 나갔다. 나는 수영을 하면 안 되는 귀를 가졌고, 무엇보다 취하지 않았으므로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새벽에 바다에 들어갈 용기도 용의도 없었다.


술 취한 그들의 끈질긴 설득을 이겨내고 혼자 남은 동안 나도 담배를 피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했던 게, 지금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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