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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Mar 28. 2020

“꿈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을지 모른다”

신해욱 『해몽전파사』


어젯밤 자기 전에 『해몽전파사』를 읽다가 잠 때를 놓쳤다. 나는 잠은 오는데 잠에 들지 못하면 잠들 때까지 눈물이 흐른다. 계속 줄줄,은 아니고 눈물이 모여 한 방울 흐르고 또 모이면 한 방울 흐르는 식. 결국 불을 끄고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넷플릭스를 켰다. 메인 화면에 <프루스트의 살인 해석>이라는 독일 드라마 광고가 떴다. 보다 잠들기를 바라며 1화를 틀었고, 1화가 끝날 무렵 잠이 쏟아져서 마지막 5분을 힘겹게 견디며 다 본 후 잠들었다.



눈을 뜬 건 오전 아홉 시가 좀 덜 돼서였다. 더 자고 싶었지만 금세 다시 잠들 것 같지는 않아서 다시 『해몽전파사』를 읽었다. 한 시간쯤 보다 잠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후 2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꿈 일기를 썼다. 이야기를 다 쓰지 않고 몇 가지 이미지만 나열했는데, 뭐라고 썼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일기장을 펼쳐 봐야 알 수 있다. 꿈은 깨자마자 텍스트로 붙들어두지 않으면 이렇게 완전히 휘발된다.

꿈 일기는 보통 깨기 직전 꿨던 꿈에서 시작한다. 세부나 논리가 지워진 상태여서 곰곰 되짚으며 써 내려가다 보면 불현듯 그 전, 또 그 전의 꿈이 기억난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일어난 후 다시 잠들어서 한두 시간 더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럴 땐 꿈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꿈 일기를 많이 못 썼다.

꿈 일기를 매일매일 쓰는 동안에는 대체로 3개의 꿈 일기를 적었다. 스마트워치가 기록해준 잠의 패턴을 보면, REM 수면 상태의 그래프 구간과 내가 기억하는 꿈의 개수가 대체로 일치했다. 기억하는 건 세 개뿐인데 그래프가 4개라면, 잠든 직후의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 첫 렘수면 때 꾼 꿈이라 기억할 수 없는 거라고 짐작했다.


친구와 여행 간 첫날 밤, 친구가 간밤에 내가 했던 잠꼬대를 말해줬다. 다음 날에도 또 잠꼬대를 한다면 시간을 봐 달라고 했고, 다음 날에도 나는 또 잠꼬대를 했다고 한다. 잠꼬대 때문에 깬 친구가 잊지 않고 시간을 체크했고 다음 날 렘수면 그래프와 비교했는데 시간대가 맞았다.



이런 이유에 더해 나는 여러 지점에서 『해몽전파사』에 깊숙이 이입했다. 우선, 소설 속에는 해몽전파사의 구체적인 위치가 나오는데, 묘사를 보면서 곧바로 예전에 헤매 본 적 있는 골목이 떠올랐다. 해몽전파사의 위치는 무학초등학교 근처였고, 내가 헤맸던 건 무학여중 근처였지만 왠지 그때 그 골목이 떠올라서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꿒의숨’이라는 트위터 계정 소유자가 열었던 모임이 있었던 장소는 서울숲이었다. 우리 동네다. 무엇보다 꿈을 너무 많이 꾸고 기억해서 피곤한 나머지, 올해부터 꾸준히 꿈 일기를 써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소설이라기보다는 거의 르포로 읽혔다.



이 책에는 46개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보면서 시인이 소설을 쓰면 이런 소설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 경우 꿈은 현실과 매우 가깝다. 말은 안 되지만 어쨌든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깨고 나면 피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꿈 얘기는 훨씬 더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꿈에 가깝다. 현실을 반영했겠으나 현실의 형태와는 매우 거리가 멀어서 언어로 포착해내기 어려운, 그래서 시가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은. 내 꿈 일기는 장르로 따지자면 소설에 가까운데, 신해욱 작가가 기록해 준 꿈 일기의 장르는 시였다.



오늘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프루스트의 살인 해석> 2화를 보고, 『해몽전파사』를 마저 읽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달리기는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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