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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Jan 05. 2021

이름도 없는 산을 종종 방문하는 일


처음 이사 왔을 때 거실에서 보이는 낮은 산을 보고 저 산에도 등산로가 있는지 입구는 어디인지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었다. 중개인은 혼자는 가지 말라며 입구를 말해주진 않았다. 한 번 더 물어봤다면 알려주기야 했겠지만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이사 온 지 두 달 만에 무성하던 푸른 잎들이 탈색하고 변색하고 낙하했다. 듬성해진 나뭇잎 사이로 전보다 선명하게 길이 드러났다.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헬스장, 스쿼시 코트들 덕분에 저기를 찾아가 보자는 용기를 냈다. 저렇게 드러냈으니 혼자서도 입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용기와(지도 앱이나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저렇게 드러나니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12월 초 처음으로 산의 능선을 보며 대략 짐작해서 입구를 찾아냈다.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집에서 나와 10분 정도 걸어서 주택가를 지나 올라가면 창고 건물 뒤쪽에 입구가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고, 가족 공동묘지인지 사유지라는 팻말이 걸린 채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그 공동묘지와 창고 건물 사이에 등산로 입구라 할 만한 계단이 있었는데, 심지어 좁고 짧은 시멘트 계단은 커다랗고 붉은 창고 뒤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단 한 번도 길을 잘못 들지 않고 그 계단을 찾았다.



2004년 겨울에 친구와 함께 파리 개선문에서 에펠탑을 찾아 걸은 적이 있다. 에펠탑의 불빛은 어디서도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만만하게 그 빛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가까이 갔나 싶으면 멀어지고 거의 다 왔나 싶으면 막다른 골목이고, 에펠탑 앞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어디서도 볼 수 있던 불빛이 가장 필요할 때 사라졌다. 에펠탑을 눈 앞에 두기까지 정말 정말 오래 걸렸고 많이 걸었다.



감을 따라 어딘가를 찾아가면 나는 대체로 헤매거나 돌아가는 편으로, 방향 감각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도 이 이름 모를 산의 등산로는 그렇게 쉽게 찾아냈고 그 후로 종종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처음 입구에 올랐을 때, 늘 거실에서 바라보던 능선에 서서 우리 집을 찾아내고 거실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묘했다. 처음에는 외부인이 우리 집을 얼마나 자세히 볼 수 있는가 정찰하는 느낌이었다면 그다음부터는 왠지 저 안에서 이곳을 바라보던 나를 마주 보는 기분이었다. 저곳에서 이곳을 내다보는 나와 이곳에서 저곳을 들여다보는 내가 서로를 보았다.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선형적으로만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는 한 점에 놓일 수 없지만, 어떤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는 동시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집 안에서 잠을 자거나 풍경을 구경하거나 어쩌면 또 같이 나를 보고 있을 함께 사는 고양이들을 본다.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집고양이들과 역병으로 인해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하는 시대를 사는 나를 그렇게 조금 더 높은 산 위에서 들여다보고 조금 더 산을 오르고 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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